[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하고 있는 '자전적 에세이'를 빼놓지 않고 읽는 것은 그가 3년간의 칩거를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궁금해서가 아니다. 오늘로 10번째 글이 올라왔는데 주로 그런 내용으로 꾸며져 있어 다소 지루한 감이 있다.
그보다는 성추행이 있던 당일의 행적과 인턴과의 신체접촉 경위, 조기 귀국을 결정한 과정과 귀국 후 조사를 받으며 벌어진 일들에 대한 그의 증언이 관심사다. 윤 전 대변인이 입에 거품을 물며 저주를 퍼붓고 있는 한국 언론의 기자들은 2013년 5월 당시 이 같은 정보의 파편들을 모아 퍼즐을 맞추느라 고생 좀 했었다.
언제쯤 그가 이런 소중한 정보들을 제공할지 좀 더 기다려봐야겠지만 일단 느낌은 좋지 않다. 그는 성추행과 관련해 미국 검찰의 기소가 없었다는 게 무죄를 입증하는 것이란 근거를 댔다. 그는 격려 차원에서 인턴의 허리를 '툭' 친 게 전부라고 귀국 후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허리이며 어디부터 엉덩이인지, '툭' 친다는 게 어느 강도의 접촉을 말하는 것인지 매우 주관적이란 게 문제다. 피해자 측에서 사실관계를 따지고 들지 않는 한 두 사람 간의 신체접촉 장면은 윤 전 대변인 입장에서 묘사된 언어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윤 전 대변인이 워싱턴에서 만취상태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는 보도에 대해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와 함께 새벽 3시, 5시까지 술을 마셔본 사람은 지금이라도 나와보라"고 주장했다. 말 그대로 '새벽 5시까지 마셨다'는 게 거짓이란 뜻이다.
그가 당일 밤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다. 기자는 얼굴이 빨개진 그를 밤 10시쯤 중국식당에서 만났다. 피해자로 추정되는 여성이 당시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6시 기자는 그를 숙소 흡연구역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혀가 심하게 꼬여 말을 알아듣기 어려운 정도로 만취상태였다. 새벽 5시인지 3시인지 지엽적인 사실관계를 들먹여 당시 자신을 둘러싼 보도의 진실성 전체를 부정하도록 독자들을 유인하려는 것이란 의심이 든다.
그에 대한 당시 언론보도가 여러 측면에서 다소 지나쳤다는 것은 인정한다. 기자 역시 그 대열에 끼어 있었지만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으며 그런 태도를 견지한 언론인이 적지 않았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가 언론에 대해 갖게 된 심각한 피해의식과 증오는 일견 이해할 수 있으나 그 역시 냉정함을 되찾길 바란다. 기자 출신인 그가 일으킨 전무후무한 스캔들은 1년 뒤 세월호참사와 함께 '기레기'라는 신조어의 등장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는데, 언론개혁에 삶의 방향을 맞추겠다는 그의 다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후배 기자들은 난감하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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