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이래 대대적 검찰수사 받은 적 없는 '어벤저스급 대관'에 구멍났나
'일본기업이라 특혜'·'비자금 없는 회사' 엇갈린 평가도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오주연 기자, 이주현 기자] 롯데그룹은 10대 그룹 중 검찰의 수사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유일한 대기업이다. 계열사들이 수사선상에 오른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그룹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정책본부와 주요 계열사들이 한꺼번에 수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그간 롯데를 둘러싸고 '대관이 강하다', '비자금을 조성하지 않는다', '일본기업이어서 특혜를 받았다'등의 평가가 나온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초기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를 일부 확인하면서 이같은 평가는 일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졌다.
◆日 향하는 검찰 칼 끝…'국적논란' 재점화= 롯데그룹을 향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 범위가 일본까지 확대되면서, 지난해 가족 간 경영권 분쟁으로 고개를 들었던 '국적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검찰은 롯데그룹이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일본으로 빼돌리는 등 국부를 유출했다는 정황을 잡고, 이를 집중수사하고 있어 논란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17일 검찰 롯데수사팀에 따르면 이들은 롯데케미칼 측에 일본 롯데물산과의 거래 및 자금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하면서 일본 롯데물산을 중간에 끼워 넣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던 롯데케미칼이 지난 15일 이에 대해 적극 부인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롯데쇼핑 등 핵심계열사가 국내 금융사를 두고 굳이 높은 금리로 일본 롯데 계열사를 통해 1조원이 넘는 대출을 받은 것도 국부유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매년 이자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일본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것은, 이 과정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의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다. 전자상거래 계열사 롯데닷컴의 경우 일본의 부실 자회사에 채무지급보증을 섰다가 1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해당 자회사 롯데닷컴재팬은 자본잠식에 빠지면서 작년 1월 폐업한 상태이며, 차입액의 대부분을 롯데닷컴이 떠안은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가족 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도 롯데그룹은 국적논란으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롯데그룹의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내홍을 겪으면서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일본 회사인 롯데홀딩스가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신동빈 회장이 직접 나서 "롯데는 한국회사"라고 못을 박았지만, 논란 이후 현재까지 여론은 우호적이지 못한 상태다.
실제 롯데그룹 총수 일가는 일본 롯데홀딩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호출자와 순환출자 등을 통해 일본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최근 상장이 불발된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 호텔롯데 역시 L투자회사(72.6%), 롯데홀딩스(19.1%), 광윤사(5.5%), 패미리(2.1%) 등 일본 쪽 회사가 직접 보유한 지분율이 94%에 달한다. 당초 검찰 수사 전 호텔롯데가 제시했던 최저 공모 희망가격(9만7000원~12만원)을 기준으로 계산할 경우 구주매출로 일본 계열사가 회수하는 자금 규모는 최대 2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 바 있다.
◆"내부 분위기는 그게 아닌데…" 과거 '읍참마속' 경질도 = 최근 만난 롯데그룹 관계자는 "그룹 내부 분위기로 미뤄볼 때 조직적인 비자금 조성이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롯데그룹은 지금까지 배임·횡령 등의 의혹이 생겨날 경우 곧바로 해당 임원을 경질시킬 정도로 '비리'에 있어서 감시·관리를 철저히 해왔다. 아무리 그룹 총수가 각별 한 애정을 뒀던 임원이라도 이러한 잣대에서 벗어나 그룹 내 부정 이슈를 일으켰다면 읍참마속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은 각 계열사에 대한 비자금 조성 의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신헌 전 롯데홈쇼핑 대표다. 롯데 공채 출신인 신 전 대표는 선배들보다 앞서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대표이사를 맡을 만큼 그룹 내 입지가 탄탄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을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신격호 총괄회장 측의 사람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잘 나가던 신 전 대표는 롯데홈쇼핑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횡령, 배임수재 혐의로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진사퇴 했지만, 사실상 내부의 경질이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현재 그는 관련 혐의가 인정돼 구속수감된 상태다.
일각에서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면세점 입점 명목으로 수십억원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사고 있는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도 신 회장이 읍참마속 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신 이사장은 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으로 출국금지 된 가운데 검찰소환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검찰은 신 이사장 측이 네이처리퍼블릭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면세점 입점과 우호적인 매장 위치 조정 등의 편의를 봐 준 정황을 포착했다.
롯데 계열사 한 관계자는 "이 정도로 엄격하게 비자금을 만들지 않도록 분위기를 형성해왔다"며 "현재 검찰이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이 계열사로부터 받은 배당금 등 300억원이 비자금과 연관됐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나올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어벤저스급 롯데 대관, 검찰 수사에 '구멍'=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이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에 흔들리자 대관조직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관업무란 입법과 행정을 담당하는 국회ㆍ정부를 비롯해 검찰, 경찰, 국세청 등 사정기관을 상대로 기업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업 대관팀은 단순한 신상 정보 수집에서부터 로비스트 역할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롯데그룹의 대관조직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신동빈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별다른 잡음없이 무사히 상황을 넘기는 깔끔한 일처리로 주목을 받았다. 신 회장의 증인 채택을 무산시키지는 못했지만 대관팀이 여야를 불문하고 뛴 결과 비교적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롯데그룹이 굵직한 인수합병(M&A)를 성공하고 제2롯데월드타워 등 각종 인허가를 따낸 것도 대관의 힘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재계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이 그동안 화려한 대관라인으로 위기를 잘 넘겨왔지만 이번만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집안일에 신경 쓰느라 바깥일을 돌보는데 소홀했고 그동안 수사 경험이 없어 대응 능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시각에서다. 실제 롯데그룹 대관 업무 전반을 총괄하고 있는 소진세 사장은 귀국 후 대관 담당자들을 불러모아 호되게 질책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롯데 대관조직이 와해됐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검찰조사로 휴대전화를 모두 압수당했고 2차 압수수색이 단행될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대관팀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알고 지내던 롯데 대관팀 인원들이 현재는 카카오톡도 탈퇴하고 외부의 연락을 모두 끊었다"며 "사실상 처음받는 대대적인 수사에 대관조직 마저 마비돼 롯데그룹은 한동안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이주현 기자 jhjh1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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