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윤의 '가까운 미래'대기획 - 본능 규제는 어디까지, 현행 법체계와 윤리헌장 들여다보니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윤리란 개인이 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공동체에 내속되는 상태에서 바깥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개인이 됩니다. 그때 처음 ‘자기’가 발견되고, 또 ‘윤리’가 문제시되는 것입니다.” - 가라타니 고진, 『자연과 인간』(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13) 중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윤리를 놓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섹스로봇에게 묻는다면 아마 “주인님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답하지 않을까? 로봇은 인간이 입력한, 또는 명령한 프로그래밍대로 철저하게 움직인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섹스로봇은 어떻게 변모할까? 극단적 가정 하에 섹스로봇과 관계 중에 인간이 사망한다면 이 사망의 책임은 로봇에게 있을까, 인간에게 있을까?
로봇이 지켜야 할 윤리
이처럼 로봇이 인간의 많은 영역을 대체하면서 여기에 적용할 윤리적 규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로봇윤리((Roboethics)’에 대한 논의가 각 분야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04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제1회 로봇윤리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학계에 처음 정립된 이 주제는 국내에서도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 2007년 국제로봇자동화학회(ICRA)에선 한국 정부가 로봇윤리헌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2장(인간, 로봇의 공동원칙)=인간과 로봇은 상호 간 생명의 존엄성과 정보, 공학적 윤리를 지켜야 한다.
· 3장(인간 윤리)=인간은 로봇을 제조하고 사용할 때 항상 선한 방법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 4장(로봇 윤리)=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순종하는 친구ㆍ도우미ㆍ동반자로서 인간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 5장(제조자 윤리)=로봇 제조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로봇을 제조하고 로봇 재활용, 정보보호 의무를 진다.
· 6장(사용자 윤리)=로봇 사용자는 로봇을 인간의 친구로 존중해야 하며 불법개조나 로봇남용을 금한다.
· 7장(실행의 약속)=정부와 지자체는 헌장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유효한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섹스로봇과 복상사
2030년, 서울 도심. 한 호텔에서 60대 남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현장에는 신고자인 여성형 휴머노이드와 사망한 남성 A씨가 있었고, 사체 수습 후 부검결과 A 씨의 사인은 심장마비로 관계 중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유족에게 사실을 설명한 뒤 시신을 인계했고, 휴머노이드는 소속업체로 귀가조치 처리됐다.
앞서 언급한 섹스로봇과 관계 중 인간이 사망한다면 사인은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가상의 상황을 그려보았다. 2016년 현재를 기준으로 관계 중 한 명이 사망, 사인이 복상사로 밝혀지고, 사망자의 심혈관계질환 또는 뇌졸중 증상이 확인될 경우 현행법상 관계를 맺은 상대방은 무혐의 처리된다. 이러한 가상상황에 대한 대처매뉴얼을 프로그래밍, 향후 출시될 섹스로봇에 관계 중 상대방의 심박수 및 체온, 혈관계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장착한다면 로봇의 뛰어난 기능에 속출하는 사망자를 줄이는 좋은 예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본능은 죽여서는 안 되며 다만 규제해야 한다. 그런데 본능을 규제하는 일은 아마 그것을 죽이는 일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루소는 ‘에밀’에서 본능을 규제하는 일은 본능을 죽이는 일보다 어렵다고 경고한다. 로봇의 발명과 인공지능 기술의 결합, 이를 통해 탄생한 다양한 형태의 로봇은 비단 섹스로봇에 그치지 않고 전투로봇, 킬러로봇 등 인간이 필요로 하되 하기 어려운 분야를 바탕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투입될 것이다. 여기에 대한 규제는 이를 개발하는 과정보다 더 어렵고 복잡하다.
이세돌 9단과의 대결로 그 성능을 입증,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알린 알파고를 개발한 인공지능업체 Deep Mind를 인수한 구글은 인공지능 윤리위원회를 설립하고 윤리강령을 제정해 이를 기술개발에 적용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를 주도할 윤리위원의 명단과 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아 투명성을 놓고 비판받은 바 있다. 기업과 일부 학계의 연구를 통해 여전히 로봇의 윤리에 대한 실천은 개발주체의 개별적 양심에 따라 편리한 만큼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확산되면서 이들과 인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은 빠르게 찾아올 것이다. 미국 워싱턴대 인공지능 법학자인 라이언 칼로 교수는 “다가오는 로봇과 인공지능 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에 현행 법체계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하면서 “로봇과 인공지능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법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이 문제에 대한 법 규범이 사법 판결 단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총체적인 입법단계로도 이어져야 한다는 각계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증기드릴과 맞서 인간의 우월함을 증명하려 했던 존 헨리의 거친 움직임만큼이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로봇의 발전 속도 앞에 인간은 아직 오만하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자신을 추격하던 데커드 형사가 난간에 매달리자 그의 팔을 끌어올려 목숨을 구해준 안드로이드 로이는 그런 인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간을 대신하는 동안 로봇만이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찰나의 순간을 열거한 뒤 읊조린다. “그 모든 기억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야.” 끝을 아는 이의 삶에 불안이란 없다. 그렇기에 인간은 너무도 불안하고 나약한 존재다. 그런 인간을 위로하는 로봇과의 공생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 로봇으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한 윤리적 규범 마련만큼이나 인간이 인간일 수밖에 없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탐구 또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너무도 인간적인 로봇에게 밀려 인간의 존재가치가 흔들리기 전에,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인간의 영역이 인공지능에 침범당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멀고도 가까운 숙제로 남을 질문이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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