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어제 제조업체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신현우 전 대표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정치권은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국회 청문회와 피해보상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고 정부도 피해자들에게 치료비ㆍ장례비 외에 생활비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옥시도 사과했다. 이런 조치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진 지 무려 5년이 지난 후에야 이뤄지고 있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검찰 수사와 국회 청문회를 통한 진상 규명과 정부의 책임 조사, 보상만으로 사건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기업이 소비자를 무서워하지 않는 한 제2의 가습기 참사를 막을 수는 없다. 검찰이 지난 1월 본격 수사에 나서기 전까지 제조ㆍ판매사들이 발뺌을 계속한 것만 봐도 그렇다. 옥시는 실험 결과를 조작하고 증거를 없앤 정황까지 포착됐다. 제2의 옥시 사건을 막기 위해선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참여연대 등 6개 시민단체가 어제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 재발을 막자며 제안한 징벌적손해배상제는 효율적인 대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정부와 국회는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징벌적 손배제는 가해자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 행위를 다시 하지 못하도록 실제 손해액의 몇 배 무겁게 배상토록 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이 시행 중이며 우리나라는 2011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유망기술을 가로채 유용한 경우 3배까지 배상토록 규정, 그 취지를 반영했다. 이후 이 제도의 전면적인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경제계의 반대와 국내법 체제에 맞지 않는다는 정부 여당의 소극적인 태도 탓에 논의는 답보상태를 보이며 관련법은 3년째 국회에 계류돼 있다.
국민의 생명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다. 반사회적 기업을 응징하는 것은 정부의 기업 규제완화 기조와는 무관하다. 현행 배상 체계로는 피해자는 충분한 배상을 받지 못한다. 반면 기업은 막대한 이득을 얻고도 소비자들의 생명과 신체 피해에 대해 충분히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 기업의 도덕불감증을 징계하고 반사회적 행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징벌적 손배제도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하도급거래 공정화법처럼 제도 도입을 위한 준비가 돼 있지 않은가.
정부와 국회는 제도의 도입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그것이 '제2의 세월호 참사'라는 옥시 피해가 확대될 때까지 손을 놓은 데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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