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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마블이 던진 현대 민주주의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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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니ㆍ조 루소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테러 끊이지 않는 현 시대 이야기
적으로 만난 어벤져스 동료들...가해자와 피해자 구분 흐려 참혹하게 다가와

[이종길의 영화읽기]마블이 던진 현대 민주주의의 과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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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다소 있습니다.

[싱가포르=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슈퍼히어로영화는 느끼하다. 맛난 기름처럼 입맛을 돋우지만 쉽게 질린다. 악당이 등장하고 이를 물리치는 구조.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피로가 쌓인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70)은 "슈퍼히어로영화도 서부극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블스튜디오는 건재하다. 단일영화와 그 속편으로 캐릭터의 매력을 알리고, 이를 가상세계로 묶어 두터운 관객층을 확보했다. 방대한 이야기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각양각색의 개성을 입힌 캐릭터들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처럼 정교하게 지휘한다. 지휘봉의 끝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해 있다.


지난 27일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는 어벤져스의 동료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을 상대한다. 갈등의 핵심은 '초인 등록법안.' 어벤져스 관련 사고로 피해가 속출하자 정부가 이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시스템을 내놓는다. 어벤져스는 두 갈래로 나뉜다.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아이언맨의 찬성파와 자유롭게 인류를 지키겠다는 캡틴 아메리카의 반대파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마블이 던진 현대 민주주의의 과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스틸 컷


원작자 마크 밀라(47)는 9.11 테러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 약 3000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공격. 미국의 자존심은 일거에 무너졌다. 전역에 테러에 대한 공포가 번졌다. 자유 민주주의의 틀에서 자라온 미국인들은 안전을 우선시하기 시작했다. 개정된 패트리어트법(애국법)은 6주 만에 통과됐다. 그로 인해 국토안전부, 중앙정보부, 특수정보국 등의 공권력은 강해졌다. 유선ㆍ구두ㆍ전자통신에 대한 감청을 확대하고, 테러 혐의를 받는 외국인의 기소 전 구금 기간을 일주일까지 늘린 조항으로 인권침해 논란도 일었다. 우리도 비슷한 문제로 갑론을박했다. 2001년 11월 국가정보원이 주도해 발의한 테러방지법은 지난 3월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법제화됐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민간인 사찰 등에 악용될 수 있다며 9일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했다.


따분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마블스튜디오의 세계관에 투영되면서 활기를 얻는다. 양 측 의견이 생생한 영웅들의 역사, 언행 등과 어우러져 설득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선악 구분 없는 '분열'이라는 새로운 흥밋거리를 제공한다. 안소니 루소 감독(46)은 "모두가 조금씩 정당하고 조금씩 그렇지 않으면서 대립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마블이 던진 현대 민주주의의 과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스틸 컷


두 영웅의 대립은 극적이다. 앞서 나온 단일영화들을 감상한 관객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는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 초인 병사 계획에 자원하지만, 여러 사건을 경험하면서 정부 조직의 무서움을 체감한다. 반대로 아이언맨은 많은 돈을 벌고 파티를 즐기는 등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여러 사건을 마주하면서 '슈퍼히어로'라는 무게에 짓눌린다. 어벤져스의 실질적인 리더로 활동하며 효율적인 조직 운영도 고민한다.


영화는 이데올로기만 앞세우지 않는다. 블랙팬서(채드윅 보스만)는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고, 호크아이(제레미 레너)는 가족의 신변을 걱정한다.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은 학자금을 벌려고 싸움판에 뛰어든다. 일부 인물들은 공개된 적 없는 사적인 문제에 얽히기도 한다. 책상 앞에서 논의하면 그만일 것 같은 문제는 그래서 한바탕 싸움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감옥 등은 탄탄한 이음새로 작용해 주제를 부각한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마블이 던진 현대 민주주의의 과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스틸 컷


원작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죽는다. 영화도 비극으로 흐른다. 하지만 이미 알려졌듯 희생과는 거리를 둔다. 루소 형제(안소니ㆍ조)는 대신 책임을 강조한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은 누구도 승리할 수 없던 싸움이 끝나자 동료들을 챙기기 바쁘다. 적으로 마주한 이전 동료들도 걱정한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옳은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저 계속 고민해야 할 현대 민주주의의 과제로 남겨놓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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