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태와 관련한 피해자들의 첫 집단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본격화된 가운데 배상 청구 권한과 직결되는 소멸시효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소멸시효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도 행사하지 않은 채로 일정 기간이 흐르면 권리가 소멸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불법 행위에 따른 책임을 묻고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상의 권리는 피해자가 손해 사실이나 가해자를 인지한 때로부터 3년 안에, 또는 불법 행위가 벌어진 시점으로부터 10년 안에 행사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에 따르면, 27일 현재까지 소송에 참여하기로 한 피해자들 가운데 다수는 10년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소멸시효가 완료됐거나 임박해 원칙적으로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그간 개별적으로 소송에 나서려 했던 일부 피해자는 이 같은 문제로 소송을 포기한 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변은 재판이 시작되면 법리적으로 구제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계획이다. 문제가 된 제품은 1994년에 팔리기 시작했으나 각종 피해와의 인과관계는 2011년이 돼서야 조금씩 알려졌다. 정부가 첫 피해 판정을 내린 건 2014년이다.
화학ㆍ의학적 전문지식의 영역에 속하는 사안이라 피해자들로서는 선뜻 법정 다툼에 나서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민변은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소멸시효 적용 시점에 대한 법원의 넓은 해석을 요구하고 설득하는 방식으로 소송을 진행할 방침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원리원칙을 떠나 유연하게 해석할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맥락이 복잡하고 사회적으로 중대한 이런 사건에 법리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관한 기준을 다 같이 찾아가는 과정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민변은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 달 30일에 1차 집단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26일 현재까지 74명이 소송 참여 의사를 밝혔다는 게 민변의 설명이다.
민변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과 함께 다음 달 9일까지 소송인단을 1차로 추가 모집한다. 1인당 배상 청구 금액은 3000만~5000만원 선에서 정해질 전망이다.
한편 검찰은 이날 신현우 전 옥시 대표, 선임연구원 최모씨 등 핵심 관계자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들이 문제의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한 연구기관으로부터 살균제 원료의 흡입독성을 경고하는 전자우편을 받고도 묵살한 정황을 잡고 사실관계를 캐물었다.
신 전 대표는 조사를 받으러 들어가면서 "(살균제의) 유해성을 몰랐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신 전 대표 등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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