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8일 오후 강남구에 있는 한 은행을 찾은 고객 허모씨(34ㆍ남)에게서 신고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은행 직원들이 나를 둘러싸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파악한 상황은 허씨가 주장한 내용과 딴판이었다. 허씨는 이 날 오전 이미 한 차례 해당 은행을 찾아폭력을 행사하고 소란을 피웠다. 업무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오후에 은행을 다시 찾은 허씨는 애꿎은 창구 여직원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일을 할 때는 웃으라"고 강요하거나 "서비스직인데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고 따지는 식이었다. 출금을 요구하고서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손이 떨려서 숫자를 못 적겠다"고 어깃장을 놓거나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는다"며 시간을 끌기도 했다. 10분이면 끝날 출금 업무는 1시간 넘게 이어졌다.
허씨는 심지어 5000만원이 넘는 돈을 자기 앞에서 직접 세어보라고 거듭 강요하며 직원을 괴롭혔다. '갑질'이 계속되자 다른 직원들이 허씨를 제지하거나 허씨에게 항의했고, 허씨는 직원들의 이런 행동이 자신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경찰을 불렀다가 되레 덜미를 잡혔다. 상황을 파악한 경찰이 경범죄처벌법상 거짓신고 혐의로 허씨를 즉결심판에 넘긴 것이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김주완 판사는 허씨에게 구류 5일과 유치명령 5일을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법원이 즉결사건에서 구류 명령을 내린 건 이례적이며 2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되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김 판사는 "즉결법정에서 피고인(허씨)을 처벌하는 것이 옳은 지에 대해 고민이 많이 됐다"고 털어놨다.
김 판사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고충을 특별히 고려했고 선고문에 이렇게 적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상대방에게 웃으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습니다…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감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서비스직 종사자는 무조건 고객에게 맞춰야 한다는 피고인의 사고방식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김 판사는 허씨를 정식 재판에 넘겨 더 엄격하게 처벌할 까도 고민했으나 그에게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즉결심판으로 사건을 마무리 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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