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조선을 휩쓴 대하소설 여성작가 '완월당'신드롬

시계아이콘02분 13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빈섬 스토리텔링 - 조앤 롤링 뺨치는 인기, '완월회맹연'을 쓴 이씨부인


조선을 휩쓴 대하소설 여성작가 '완월당'신드롬 '완월회맹연'을 쓴 조선의 작가 이씨부인.<그림 오성수 화백>
AD



“여보. 내가 군수로 있는 김제의 기막힌 이야기요. 당신이 이것을 한번 잘 정리해주오.”
남편 안개(1693-1769)는 편지를 보냈다. 아내는 그 내용을 정리해서 다시 남편에게 보내준다. 이런 사연이었다.

김제에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저마다 흩어져 100가구가 넘던 곳이 10가구로 줄었다. 고씨 성을 가진 선비 부부도 굶주림을 못견뎌 서로 헤어지기로 하였는데 문득 아내가 말하였다. “지금부터 빌어먹어야 할 것이니 집안에 있는 짐승을 돌볼 겨를이 있겠습니까? 오래된 가견(家犬)을 죽여 하루라도 그대를 배불리 먹일까 합니다.” 그때 남편이 말하기를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우리의 부덕을 모르겠는가. 나는 차마 그리 할 수는 없소.”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그대의 선한 심성을 어찌 제가 모르겠습니까. 제가 부엌 안의 기둥에다 개를 헐겁게 매어놓을 터이니, 그대는 밖에서 그것을 눈 딱 감고 당기시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차마 아내에게 개를 잡으라고 말할 수 없었던 남편은 “알았다”면서 밖에서 새끼줄을 당겼다. 그리고 들어가 보니, 개가 아니고 바로 그의 아내가 목줄에 매달려 숨져 있었다.


남편은 이 내용을 정리하여 상소로 올린다. 이 비극적인 스토리를 정리한, 안개의 아내는 완월당(玩月堂) 이씨(1694-1743)였다.

18-19세기 영국에 제인 오스틴(1775-1817, ‘오만과 편견’의 작가), 샬롯 브론테(1816-1855, ‘제인 에어’의 작가), 그리고 해리포터 시리즈를 낸 조앤 K 롤링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이제 18세기 조선의 여성소설가 완월당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그녀는 180권(요즘 방식으로 편집하면 최소 20권)에 달하는 방대한 대하소설을 썼다. 조선에 전문적인 소설가라니, 그것도 남성도 아닌 여성 소설가라니... 그녀의 존재는 많은 학자들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만큼 낯설고 신비했다. 어떻게 이런 인물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잠깐 그 시절의 거리를 기웃거려보자.


16-17세기 왜란과 호란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남겼다. 겁탈과 능욕이 지나간 뒤 사내들은 여성들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연민을 보여주는 대신, 그녀들을 규방 속에 깊이 가두는 질곡(桎梏)의 사회시스템을 굳혀 나갔다. 당시 조선은 당쟁이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세상의 가치는 혼란스러웠다. 벼슬을 꿰차고 솟아오르던 사내들은 어느 사이 급전직하로 추락하여 집으로 돌아오거나 귀양길을 걸어갔다. 속으로 차오르는 고독감과 지적 열정을 감당할 수 없었던 여성들은 밤마다 독서에 탐닉하며 좌절감을 달랬다.


세상에 대한 갈증과 규방 속의 갑갑함, 그리고 갈피 잃은 사회에 대한 염증 때문이었을까. 요즘의 일일 드라마와도 같이 엿가락처럼 이어지는 장편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한자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은 독자들이 많았기에 국문으로 씌어진 것들이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소설을 베낀 필사본을 빌려주는 세책가(貰冊家)들이 등장했다. 책을 빌려가는 고객은 주로 도시의 부녀자들이었고 궁중여인들도 즐겨 읽었다. 당시의 필사본 책들 말미에 적힌 글귀들을 보자.


“보신 후 유치하지 말고(슬쩍 하지 마시고) 본댁으로 전할 차(책가게에 돌려주세요).”
“부디 낙장은 마옵소서.(책 찢어내지 마세요.)”
“오자도 많고 낙서도 많은데 세책비(貰冊費)만 높구려. 세책으로 놓으려면 깨끗한 것을 놓으시오.”
이런 글귀 이외에도 세책가들이 적어놓은 대여료 숫자도 보이고, 또 책을 종이 노끈으로 묶어둔 것도 있다.


이같은 소설 열풍의 중심에 한 여성이 있었다. 18세기 초 인기작가로 떠오른 완월당이 그 사람이다. 전주 이씨로 알려져있는 이 여인을 ‘완월당’으로 호명한 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객기이다. 그러나 나름으로 짐작의 근거가 아예 없지는 않다. 당시 그녀의 베스트셀러 작품이었던 180권 짜리 대하 장편소설 ‘완월회맹연(玩月會盟宴)’은 줄여서 ‘완월’로 불리기도 했다. 이 소설을 쓴 부인은 당시 관행 탓에 ‘익명’에 숨어있어야 했지만, 당시 한양의 맹렬독자들은 그녀의 존재를 알음알음으로 알고 있었다. 호사가들의 습관이 그렇듯 인기 작가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혹자는 그녀를 ‘완월부인’이라고 호칭했고 혹자는 아예 호처럼 ‘완월당 이씨’로 부르기도 했다.


완월 애독자들은 세책가나 같은 취향의 친구들을 만나면 ‘완월부인이 새로 납셨나?“라며 신간을 탐색했다. 대표작을 작가의 호칭에 쓰는 일은 그리 낯설지 않지만 그녀가 완월부인이 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완월회맹연‘의 의미는 ’달놀이 모임에서 결혼을 맹세하다‘는 뜻이다. 거기에서 완월(玩月)만 떼내면 ’달구경‘이다. 달은 여성을 의미하는 은유이기도 하고(음양의 이치를 따지는 조선에서는 특히 이런 비유가 울림이 있었다), 이 세상과는 다른 별세계(別世界)를 가리키기도 했다.


완월회맹연은 중국 명나라를 배경으로 갈등의 가정사를 다룬 대하소설로, 악인과 선인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대비되면서 사건으로 뒤엉켜 독자를 사로잡는 뛰어난 작품이다. 유교사상과 충효, 우애를 강조하고 있지만, 갈등 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다채로운 면모와 긴박한 상황 전개가 TV 주말드라마 못지않게 '중독성'이 있는 소설로 평가된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