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떠난 한국 여자농구 대표 센터…공 대신 책 잡은 사연
[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한국 여자프로농구 최장신 센터 하은주(33ㆍ202㎝)가 코트를 떠났다. 그는 농구공을 내려놓고 책을 들었다.
하은주는 지난 4일 은퇴를 알린 뒤 학업에 전념하고 있다. 2012년 3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스포츠심리학 박사과정에 진학한 후 시간을 쪼개며 공부해왔다. 그는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다. 소속팀(인천 신한은행)과 대학에서 많이 배려해주셔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해왔다. 나의 부족함을 (공부로) 채워 필요한 곳에 쓰고 싶다"고 했다.
하은주가 공부하는 이유는 동료들을 돕기 위해서다. 선수들이 운동선수 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풀어주고 싶어한다. 여기에는 자신의 선수시절 경험이 담겼다. 그는 고통스럽게 선수 생활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도 적지 않았다.
특히 부상 때문에 고생했다. 하은주는 중학교 2학년 때 오른쪽 무릎 연골이 닳아 없어졌다. 자라는 어린 선수의 성장을 고려하지 않고 혹사한 결과다. 그래서 선수로 생활하는 동안 줄곧 통증을 느끼며 뛰었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 국내 최장신 센터에게 거는 기대도 부담이었다.
하은주는 "항상 힘들었다. 무릎이 안 좋았고 경기에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강박도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많이 아파 상담도 자주 받았다. 개인종목에 비해 단체종목의 심리 상담은 덜 일반화되어 있다. 내가 공부를 해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가족은 하은주의 버팀목이다. 아버지 하동기(58) 씨와 동생 하승진(31ㆍKCC)은 3년 전부터 은퇴를 권했다. 오른쪽 무릎 통증은 갈수록 심했고, 나이도 적잖아 한계를 맞았다. 가족은 그를 격려하고 은퇴 후에 빠르게 제 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하은주는 "(가족은) 나를 전적으로 믿어준다. 내 몸을 걱정했다. 은퇴를 결심한 다음 '하고 싶은 것 많이 하면서 살아라'는 격려를 많이 받았다. 3년 전에 그만 두지 않고 여기까지 와서 은퇴하니 아쉬움은 없고 홀가분하다"고 했다.
하은주의 은퇴는 우리 농구에 큰 손실이다. 여자대표팀은 하은주가 있었기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수확했다. 그러나 프랑스 낭트에서 열리는 리우올림픽 최종예선(6월 14일~20일)에 하은주 없이 나가야 한다.
하은주는 후배들을 믿는다. 그는 "한국여자농구, 죽지 않았다. 최종예선에서 올림픽 티켓을 꼭 딸 것"이라고 응원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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