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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 철학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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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윤의 '휴먼 딥마인드' - 인류는 어디까지 승리하고 패배했나


“더 이상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만 기록하고 서술할 수 있을 뿐이다.”


철학의 이론 정립을 반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지적은 알파고를 설명하는 데도 아주 유용하다. 이윽고 그는 “생각하지 말고 들여다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이세돌 9단의 복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초 이세돌 9단의 압승이 점쳐졌던 알파고와의 대국은 이내 이 9단의 3연패에 인공지능에 대한 경계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고, 지난 13일 이 9단이 거둔 신승에는 ‘인간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위로와 ‘인류의 승리’라는 환호가 쏟아졌다. 과거 체스 컴퓨터 딥블루가 체스 세계챔피언 카스파로프를 이긴 것에 비춰볼 때 알파고는 과거 기계적 계산에 기반한 프로그램에서 특정 문제를 인간처럼 푸는 것을 목표에 둔 약인공지능 기술의 약진을 상징한다.


알파고는 지상에 속하지 않는 이성적 존재?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에서 지상에 속하지 않는 이성적 존재에 대해 언급한다. 여기에서 인간은 이성적인 지상의 존재 중 대표가 되고, 그런 인간이 스스로 종의 특성을 규정함에 있어 이성적인 ‘비지상적’ 존재에 대한 지식이 없으므로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성적인 비지상적 존재의 예로 천사를 들었는데 그 이유는 지상에 묶이지 않은, 즉 신체에 고정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대국을 펼치고 있지만, 신체가 없는 프로그램이다. 수많은 프로기사들의 기보를 갖고 13단계에 걸쳐 감독 학습을, 스스로 어떤 수를 두었을 때 승리했는지 분석하는 강화 학습을 거쳐 매 수의 공헌도를 매기는 가치 네트워크를 통해 착점을 결정한다. 개발참여자이자 아마 6단 아자황의 손을 빌려 대국에 나선 알파고는 칸트가 말한 이성적인 비지상적 존재의 조건에 충분히 부합하는 인공지능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승부는 칸트가 제시한 인간 종(種)의 특성을 규정하는 데 쓸 수 있는 비교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언의 철학, 바둑


바둑은 말이 아닌 손으로 나누는 대화라 하여 수담(手談)이라 불렸다. 규칙이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역으로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일찍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개발, 인간을 능가한 기술을 선보인 장기나 체스에 비해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된 게임이다. 그렇기에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의 제1국 패배소식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과학적으로 무의미하더라도 우리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은 과학적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철학자의 고백에서 첫 패배 앞에 망연히 스스로 복기에 나선 이세돌 9단의 심정을 유추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를 답습하고, 알파고 역시 이 9단과의 대결에 앞서 16만 개의 기보를 습득해 놀라운 경기를 선보였지만, 이것은 한정된 문제(바둑)에 대해 인간에 가까운 선택을 통한 해결을 목적으로 한 약인공지능 기술에 국한될 뿐, 하나의 자율적 ‘지능’으로 규정하기엔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대국 상대자와의 복기가 불가능한 점도 그 이유 중 하나.


알파고는 이 9단과의 4국에서 패한 뒤 “알파고는 포기한다. 대국 결과가 게임 정보에 추가되었다.”는 알림창을 띄웠다. 패배선언과 동시에 자료수집을 알린 것이다. 상대와 공유하지 않고, 스스로 정보수집을 통해 복기에 들어간 알파고의 학습능력은 명백한 한계임과 동시에 서늘한 메시지를 던진다. 실패한 사례를 ‘스스로’ 정보로 추가하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실착을 최소화하면서 인간을 넘어선 알파고를 통해 또 한 번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것은 기념비적인 사건일 수도, 해석에 따라선 인류를 향한 도전일 수도 있다. 사실 이미 많은 분야에서 인간을 넘어선 인공지능이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점에 비춰본다면 그 능력의 놀라움과 위험성에 대한 문제 제기에 앞서 인공지능을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대체 불가능한 인간의 사유영역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저서 ‘위대한 설계’ 첫머리에서 “철학은 죽었다.”고 단언했다. 이어 철학은 현대과학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끊임없이 인간의 존재와 인식, 도덕과 미학에 관해 탐구해온 학문에 대한 사형선고는 과학기술이 집약된 인공지능의 등장에 흔들리는 인류의 위기와도 겹쳐 보인다. 그러나 대국의 승리와 패배 모두 기록이자 정보로 추가하는 알파고와 달리 자신의 패착을 덤덤하게 털어놓고, 승리 앞엔 전에 없던 미소를 선보이는 이세돌 9단의 태도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유와 그 품격의 반증이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보여준 바둑 실력은 다소간의 빈틈이 보였음에도 짜임새와 반전이 공존하는 멋진 구성의 연속이었다. 이에 한국기원은 알파고에 명예 9단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등장과 동시에 입신의 경지에 이른 알파고의 실력은 세계최고 수준으로 인정받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바둑을 두고 승부는 계속될 것이다.


"모든 과학적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도, 우리 삶의 문제는 건드려지지조차 않았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지적은 대체 불가능한 사유존재로서의 인간을 생각하게 한다. 구글이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를 인수하는데 4억 달러를 쏟아붓고, 공들여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매치를 성사시킨 것은 인공지능이 수조원의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산업의 영역임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이제 인공지능의 도전과 성과를 확인한 인류는 그다음 수를 준비해야 할 때다. 인공지능의 초읽기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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