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질적으로는 문제되지 않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2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금융당국의 인식이다.
비교적 건전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위주로 증가한 것이며 연체율은 0.33%에 불과해 금융사들의 손실 흡수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 주택 경매 낙찰가율이 80%를 상회할 정도여서 안정적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대출이라는 주택시장의 지렛대가 절실한 건설업계 역시 이같은 점을 들어 대출 규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최근 “가계부채 총액에만 매달려서 연체율이 낮은 건전한 주택담보대출에 지나치게 규제를 가하면 급격한 주택 구매 심리 위축을 가져와서 실물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했다.
“주택담보대출이 건전한 실수요자 중심으로 늘어나 주택시장 정상화 및 서민경제 안정 등 실물경제 회복에 기여한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가계부채 1200조원 돌파 통계가 나온 직후 금융당국이 내놓은 평가 중 일부를 그대로 받아온 것이다. 금융당국과 건설업계의 시각이 일치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과거 가계부채가 많이 늘었지만 현재 위험성은 높지 않고 일정부분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르다. 지난달 수도권부터 시행된 주택담보대출 심사 강화 방안이 대표적이다. 소득 심사를 강화하고 거치기간을 최소화해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나가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오는 5월부터는 지방에도 적용된다.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는 좀 더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물론 건설업계는 주택시장 경착륙 우려를 들면서 돈줄을 죄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침체된다면 그 책임은 금융에 있다는 일종의 엄포가 섞여 있다.
그렇다면 정말 양적인 문제는 없는 것일까. 금융당국은 금융사 입장에서 가계부채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다분하다. 연체율이 높지 않고 부실채권이 발생해도 경매를 통해 원금을 회수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가계 입장에서 보자. 지난해 3월 말 기준 통계청 자료를 보더라도 가구당 평균 부채는 6181만원에 이른다. 전체 가구의 57.5%가 금융부채를 보유하고 있다. 금융부채 보유 가구 중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럽다’는 응답이 70.1%이며 이 중 ‘매우 부담’도 21.8%에 이른다. 생계 부담을 느끼는 가구 중 저축과 투자, 지출을 줄이고 있는 가구는 78%를 넘는다. 부채에 짓눌려있는 셈이다.
이를 반영하듯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평균소비성향은 71.9%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5년 이후 최저 수준을 보였다.
가계부채가 늘면서 주택 시장이 활기를 띄게 하고 건설업 경기 회복에는 기여했겠지만 전체 소비를 옥죄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집값이 단기간에 급락할 경우 금융 건전성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외부 충격이다. 세계 경제 침체가 심화되면서 국내 가계 소득이 줄어들면 지금의 연체율이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위험은 현재 조건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원자력 발전소는 현재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짓지만 미래는 간혹 예상을 벗어난다.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은 애초에 만들지 않는게 옳고, 이미 만들어졌다면 최악의 상황을 감안해 최소화시켜야 하겠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