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바뀌는 시간…과학부처 또 어디로 가나?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짐 쌀 준비를 해야겠지요?"
올해 총선이 있다.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권력이 바뀌는 시간이다. 우리나라 과학부처는 권력이 바뀔 때마다 이삿짐을 쌌다. 이명박 정권 때는 교육과학기술부로, 박근혜정부에서는 미래창조과학부에 둥지를 틀었다.
2017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또 어느 곳으로 보따리를 싸야 할지. 벌써부터 '짐 쌀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썩힌 소리마저 들려오고 있다. '과학은 미래'라고 입으로는 떠들고 있는데 현실에서 우리나라 과학은 이 같은 명제와 한참 떨어져 있다.
최근 또 하나의 사례가 우리나라 과학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어 씁쓸하다.
"미국은 40년 동안 꾸준히 지원했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3년 동안 매년 1억 원씩 예산지원이 있었다. 그마저도 끊겨 자비로 연구를 수행했다."
이형목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장의 말이다. 국제연구팀은 지난 12일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에 예견했던 중력파를 직접 관측하는데 성공했다. 우주를 보는 새로운 눈이 만들어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1000여명이 참여한 국제연구팀의 성과였다. 우리나라 연구팀 14명도 포함됐다. 이 단장의 말은 미국과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에 대한 현 주소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짧은 시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 기초과학에 대해 미국은 '꾸준한 지원'을, 우리나라는 '지원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긴 시간과 지원이 필요한 기초과학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짧은 시간과 눈에 보이는 숫자를 보여주는 '창조경제'에 몰입했다. 과학파트를 관장하는 미래부 1차관은 '창조경제 브리퍼(Briefer)'로 전락한 지 오래됐다.
"5년마다 이리저리 찢겨 짐을 싸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권력이 바뀔 때마다 과학부처가 요동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조직이 필요하다."
최근 만난 여러 과학전문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과학정책의 연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 대통령제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인수위가 꾸려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정부조직개편이다. 이명박과 박근혜정부 '10년' 동안 과학은 언제나 후순위로 밀렸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과학조직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책임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와대에 과학수석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연구개발(R&D)은 이제 한 부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수석을 만들고 각 부처에 연구개발 자문관을 두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시스템은 대통령이 책임지는 것은 물론 대통령이 바뀌어도 시스템은 변하지 않는 기본 틀이 될 수 있다.
과학은 오랜 시간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중요하다. 5년 마다 '틀' 자체가 바뀌는 지금과 같은 과학 거버넌스로는 '과학이 미래'라는 명제를 실천하기에 태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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