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내 마음의 시'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집은 사람이다 인기척 없는 집이라도
바람 들어가는 죽담과 마루
아우내 개천 따라 들어온 동네 어귀 첫 집
늙은 말 앞발 턱턱 치는 주차장 가로질러
다친 한쪽 발 절뚝거리며
너에게로 간다 사진 찍으라고 세워놓은 그림
만세 군중 속 비어있는 네 얼굴
수많은 얼굴들이 그 안에 들어가
너인 것처럼 웃다 갔을 것이다
지금은 다만 늦은 오후 붉어진 햇살들만
빼꼼 고개 내밀어 잘린 목 달아준다
소녀 잃은 텅빈 집 지키라고
지어놓은 큼직한 한옥도 적막한데
3월 혹은 4월에서 번진 작은 들불인양
뒤뜰 산수유가 주인처럼 달려와 맞는다
사립문 옆에 솟은 까치집 높은 나무를
아내가 올려다보는 동안 나는
책보 감싸쥔 채 뛰며 땋은 뒷머리 찰랑거리며
매봉교회 매화 그늘 쪽으로 도는 소녀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목숨 걸고 만세부르던 그 나라의 따순 이불에서
서른 몇 해나 더 살아버린 뒤 돌아보는 누이여
꽃샘바람 매화 몇 장에 닿은
어리고 시린 코끝 쥐고는 돌아나온다
빈섬 이상국(디지털룸 에디터, 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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