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외전' 미남 사기꾼 한치원役 "장르 가리지 않지만 코미디 즐거워"
얼굴로 떴다는 얘기 싫어 연기 맹연습...최종 목표는 강한 아시아마켓 만들기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따가운 햇살이 드리운 교도소에 생기가 돈다. 한 남자가 입소했다. 186㎝의 훤칠한 키에 조막만 한 얼굴. 이목구비의 선마저 곱디고운 미남이다. 수의를 입어도 맵시가 난다. 앞섶을 풀어헤치고 소매까지 접으니 모델이 따로 없다. 자신도 그걸 아는지 차가운 외벽과 육중한 철문을 비웃으며 율동하듯 걷는다.
강동원(35)의 생김새는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사실주의 영화에 등장하면 이질감이 생긴다. 반대로 허구를 그린 영화에서는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이런 장점은 허무맹랑한 코미디 작품에서 배가된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년)'와 '전우치(2009년)'가 그랬다. 지난 26일 서울 삼청동 슬로우파크에서 강동원을 만났다. 그는 "코미디를 연기할 때가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장르를 가리진 않지만 가벼운 인물을 연기하면 신이 나요."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검사외전'은 강동원에게 맞춤옷과 같다. 묵직한 범죄스릴러와 코미디를 조화롭게 묶였다. 그는 후자를 담당한다. 전과 9범의 미남 사기꾼 한치원을 연기했다. 살인죄로 감옥에 갇힌 변재욱(황정민)의 누명을 벗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로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의 톤을 밝게 한다. 이일형 감독(36)은 "사기로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인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조감독으로 '비스티 보이즈(2008년)'를 준비하면서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요. 자신이 지금 하는 말을 진짜라고 믿었죠. 배우들이 역할에 빠져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어요."
강동원은 사기라는 행위에 중독되고 갱생의 의지가 없는 캐릭터를 밉지 않게 그려야 했다. 그래서 관객이 사기를 쉽게 눈치 채도록 연기했다. 세부적인 표현에 신경을 많이 썼다. "여느 때보다 사전준비를 많이 했어요. 의견도 많이 냈고요. 여성을 만날 때마다 추파를 던진다는 설정이 그랬죠. 은행 직원과 선거사무소 경리로 출연한 배우들에게 미안해요. 단역인데 저 때문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입술을 내주는 연기를 해야 했어요. 시나리오에 없었던 내용이라서 많이 놀랐을 거예요." 강동원은 평소에도 캐릭터 분석에 도움이 될 만한 곳을 발견하면 바로 달려갈 만큼 열정적이다.
"한치원이 펜실베이니아 주 출신이라고 거짓말을 해요. 그래서 이태원의 클럽을 방문해 외국인들을 관찰했어요. 이성에게 어떻게 추파를 보내는지를 눈여겨봤죠. 우리나라 남성들과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계속 자신 있는 표정을 지으면서 눈을 마주쳐요. 영화에서 요긴하게 써먹었죠."
실제 성격은 한치원과 정반대다. 매사에 진중하다. 말 한 마디도 조심스러워한다. 단순한 질문을 건네도 "글쎄요"라며 한참 생각한다. 그런데도 오해는 생겼다. 잘생긴 얼굴 덕에 연예계에 입문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강동원은 '길거리 캐스팅'을 수차례 거절하다가 한 이동통신사의 광고에 출연하며 처음 카메라를 접했다. 이후 각종 패션 화보 및 패션쇼를 장식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적인 패션 컬렉션 '프레타포르테'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해외 진출 기회를 거절했다. 학창 시절부터 받은 연기 수업을 이어가고 싶어서였다.
"다들 얼굴로 캐스팅이 됐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에요. 신용욱연기학원에서 열심히 배우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준비가 덜 됐을 때 모델 제의가 왔을 뿐이죠. '얼굴로 스타가 됐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해명하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시간이 흘러 결과물을 보여줘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강동원은 스타덤에 오른 뒤에도 연기 은사인 신용욱씨(49)에게서 꾸준히 연기를 배웠다. 10년여를 채우고 나서야 자립했다. "평생 남에게 의지하며 연기를 할 수 없겠더라고요. 캐릭터를 분석하는 작업이 어려워졌지만 혼자 시나리오를 읽고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배우로서 많이 성숙한 것 같아요. 특히 촬영장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유연성을 발휘할 때 뿌듯해요." 그는 일벌레다. '검은 사제들(2015년)'을 마치고 바로 '검사외전'을 촬영했다. 제작이 한창인 엄태화 감독(35)의 '가려진 시간'이 끝나면 한 달을 쉬고 조의석 감독(40)의 '마스터'를 찍어야 한다. 휴식은커녕 캐릭터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몸매를 만들기에도 빠듯한 일정이다. 하지만 강동원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다.
"얼마 전 윤종빈 감독(37)이 그러더라고요. '내 얼굴이 네 얼굴 같으면 이 시간에 일만 하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지금 나이에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것도 행복이 아닐까요. 필모그래피를 하나씩 채워나가는 데 큰 보람을 느껴요. 이왕 시작했으면 최고가 돼 봐야죠."
지난 18일 양현석 대표(47)가 운영하는 YG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맺은 건 이러한 포부를 실현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안정적인 매니지먼트와 글로벌 네트워크의 지원을 받아 세계적인 배우로 도약하려 한다. 양 대표는 "강동원을 글로벌하게 알리고 싶다. 빅뱅이나 싸이의 월드 투어를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기반을 구축했다. 단순한 매니지먼트가 아니라 더 큰 시장에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강동원의 목표는 미국 할리우드가 아니다. 강한 아시아마켓을 만드는데 일조하려고 한다.
"언제까지 할리우드의 독과점을 지켜볼 수 없잖아요.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요. 중국, 일본과 공동작업에 관심이 많아요. 기회가 된다면 꼭 도전할 겁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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