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심화되는 조선업의 위기로 금융업계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조선업 빅3(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의 영업손실이 8조원을 넘길 정도로 사상 최악인 상황인데다 올해도 업황 개선 전망은 찾아보기 힘들다. 시중은행들은 조선업 채권 부실에 대비해 충당금을 대폭 쌓을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대우조선의 경우처럼 국책은행이 지원에 나선 대기업에 대해서는 자금 회수나 자산건전성 등급 하향도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조마조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1일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은 조선업에 들어가 있는 자금을 극히 불안하게 보고 있으며 할 수만 있다면 회수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진중공업의 자율협약 신청은 금융회사들의 리스크 관리 강화에 따른 차입금 상환 압박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출만기 연장이나 신규 대출을 꺼리는 것이다.
지난해 말 시중은행들이 STX조선 채권단에서 이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은행은 이미 STX조선 여신의 건전성을 ‘회수의문’으로 분류했다. 은행들은 연체 정도에 따라 여신자산을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나눠 관리하며 회수의문 여신에 대해서는 100%의 충당금을 적립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대출 규모가 큰 대우조선 여신에 대해서는 시중은행들이 여전히 정상으로 분류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우조선에 대한 대출과 지급보증 등 신용공여액은 22조5000억원에 이르는데 이 회사의 지난해 적자 규모는 5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정상 여신으로 분류하는 것은 지난해 10월 산업은행이 4조2000억원 규모의 지원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국책은행이 살리겠다고 나선 마당에 시중은행들이 발을 빼기는 쉽지 않다.
남창우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의 주주이자 채권자이고 정부가 뒷받침하기 때문에 지원하는 것인데 일반은행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면서 “아직 재무적 처리가 되지 않은 대우조선의 미청구 공사 금액이 8조원 정도 되는데 기술력 부족 등 이유로 받을 돈보다 비용이 더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재무에 반영되면 손실이 얼마나 늘어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전반적인 조선업 회복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올해 조선업 전망 보고서에서 “해상 물동량 둔화 및 선박 공급 과잉으로 인해 조선산업 수주 여건 개선이 어렵고, 저유가 고착화에 따른 해양 플랜트 시장 침체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에 대해서는 “(국책은행 지원으로) 단기 유동성 부담은 크게 완화됐으나 해양플랜트 사업의 추가 손실 및 인도 지연 가능성, 공모사채와 기업어음(CP) 상환 부담 등을 감안할 경우 영업 내외의 자금 부담이 심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 신용평가 업계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은 국책은행과 달리 정부 손실 보전이 없기 때문에 조선업 위기를 견디기 위해서는 지난해 4분기에 충당금을 대폭 쌓았을 것”이라며 “대우조선의 경우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커서 유지해가는 것이지만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일종의 폭탄을 안고 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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