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지난 25일 정오 쯤.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기자의 핸드폰이 연달아 울려댔다. 이날 오전 10시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행정자치부의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 절차 관련 기자회견을 처리한 후 한숨을 돌리고 약속 장소로 가던 중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행자부 관계자였다. "기사가 잘 못 됐으니 당장 고쳐달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니, 코 앞에서 얘기를 듣고 그대로 기사를 썼는데 기사가 틀렸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듣고 보니 사정은 이랬다. 이날 오전 브리핑을 한 행자부 담당자는 26일 오후 국회의사당 앞 뜰에서 엄수되는 김 전 대통령 영결식에 일반 시민이 참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일반 시민들의 입장을 굳이 막지 않을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일반 시민들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수 있는지 여부는 중요한 관심사였다. 김 전 대통령은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끈 야당 지도자로서, 90년대 중반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강력한 개혁을 수행한 대통령으로서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시대의 거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기자는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 "고인의 영결식에 일반인들의 참관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기사를 온라인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정오 쯤 기자에게 전화를 건 행자부 관계자는 "정확하게 확인을 하지 않은 채 한 발언이었다"며 영결식에 초대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의 입장은 불허한다고 말을 바꿨다. 국가장법이나 국회 출입 규칙 등에 영결식장 출입 제한 규정은 없다. 그러나 전세계가 테러로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한 요인들이 많이 참석하는 등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영결식을 지켜보려면 국회 정문 밖에서 보면 된다"고 했다.
조금 후에는 행자부의 공식 입장이 문자 메시지로 날아왔다. 내용은 "영결식 행사 당일 국회의사당 영결식장에는 초청장을 받은 인원만 입장이 가능하다. 국회 정문 외 다른 문을 통해 들어오시는 시민들에 대해 막지는 않으나 영결식장 입장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26일 오후 2시부터 국회에서 엄수되는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지켜보고 싶은 국민이라면 국회 뒷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의사당 앞뜰에서 진행되는 영결식 참관은 1만여명의 초청된 인사만 가능하다. 시민들은 영결식장 밖, 즉 의원회관이나 국회도서관, 의원동산 등이나 국회 정문 밖에서 지켜보는 것만 허용된다. '시민 참관 가능'이라는 기사 내용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국회 정문 출입 및 영결식장 입장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결국 기사 말미에 행자부의 문자 메시지를 요약 정리해 넣을 수밖에 없었다.
본명 보다는 'YS'라는 약칭으로 널리 불렸던 고인은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말 그대로 '시대를 풍미한' 거인이었다. 국민들 사이에서의 인기도 누구 못지 않게 높았다. 'YS는 못말려'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책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고인을 보내는 마지막 배웅의 자리에 그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일반 시민'의 자리는 없는 것이다. 유족들이 검소하고 간소한 장례를 원해 노제ㆍ추모제도 진행하지 않아 일반 시민들의 아쉬움이 더 큰 상황이다. 시대의 거인을 떠나보내는 마당에, 통합ㆍ화합의 유언을 남긴, 누구보다도 통 크고 소통에 능했던 정치인의 마지막 가는 길이어서, 더욱 더 안타깝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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