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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 그후 2년]2-② "500원 올린다고 내가 이건희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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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대인춘풍' 슈사인 할아버지


[그 섬, 파고다 그후 2년]2-② "500원 올린다고 내가 이건희 되겠어?" 26일 서울 종로3가역 4번 출구 앞 슈사인 할아버지가 새로 쓴 간찬을 옆에 두고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자리를 비운 사이 주변 가게들이 가격을 1500원으로 올렸지만 할아버지는 1000원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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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지난 7일 오후 종로3가역 4번 출구 앞에는 여전히 '파고다 슈샤인' 할아버지가 분주히 낡은 구두에 광을 내고 있었다(사진 위).


정모(84)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이 구둣방 가격은 2년 전과 같이 '구두광택 1000원, 구두징 1000원'. 플라스틱 상자를 엎어 놓고 그 위에 깔고 앉는 앉은뱅이 의자와 손님용 플라스틱 의자 2개도 똑같다. 굳이 변한 것을 찾으라면 할아버지가 매직으로 직접 쓴 가격표. 등에 매달아 홍보용으로 사용하는 이 가격표가 흐릿해지자 얼마 전 다시 썼다고 했다.

"다른 덴 구두광 1500원 받던데, 가격표 새로 쓰면서 좀 올리지 그랬어요"라는 말을 슬쩍 꺼냈더니 핀잔만 돌아온다. "500원 올린다고 내가 이건희가 되겠어, 신격호가 되겠어. 그냥 내가 닦을 수 있을 때까지 약값이나 버는 거지 뭐." 가격표 맨 아래 잊지 않고 적어 넣은 '사람을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대하면 천 명의 손님이 만 번이라도 찾아온다'는 뜻을 담은 할아버지의 영업비밀 '대인춘풍 천객만래(對人春風 千客萬來)'도 여전했다. 할아버지의 길거리 구둣방은 그대로지만 그 옆에 있던 건물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엔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해 12월부터 호텔을 짓고 있다고 했다.


몇 분 남짓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인근 유리가게에서 일한다는 60대 남성이 안부를 묻는다. "어르신, 어제도 안 나오셨던데 다시 몸 안 좋아지신 거예요?" 사실 이 구둣방에서 가장 큰 변화는 할아버지에게 있었다. 올해 초 보건소에서 간단하게 대변 검사를 했는데 변에 피가 섞여 나와 내시경 검사를 했단다. 총 4번의 내시경 끝에 대장에 엄지손톱만 한 암 덩어리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결국 지난 8월 말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있는 삼육서울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한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지다가 지난 2일 퇴원했다고 했다.


"수술 들어가기 전에 우리집 마누라한테 써 준 것이 있어. 내가 만약에 깨어나지 못하면 '뭔 이렇게 해라 뭔 이렇게 해라' 이걸 다 해놓고 들어갔지. 일종의 유언이지. 수술 동의서는 우리 아들이 다 써줬지.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던데 그래도 다행히 깨어났어. 내가 명이 긴가봐." 슈샤인 할아버지는 퇴원 다음 날만 딱 하루 쉬고는 다시 구둣방을 열었단다. "오늘 30켤레 정도 닦았는데 이제 조금 있다가 약 타러 가야 해서 접어야 돼. 자식들도 다 실업자인데 내가 손 벌릴 수 있나."


2년이 지나는 사이 파고다공원 인근의 구두닦이 할아버지는 4명으로 늘었다. 공원 인근 우체국 한 켠에는 서너 달 전부터 한 할아버지가 구두를 닦고 있다. 또 2013년 가을 현기증이 심해서 일을 못하던 공원 동문 앞 구두 할아버지도 올 봄부터는 영업을 시작했다.끟'45년 쪽방살이' 박 할아버지= 이번엔 45년째 쪽방에서 홀로 살고 있는 박모(72)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종로 쪽방촌을 두세 바퀴 돌고서도 박 할아버지 방을 찾지 못했다. 결국 인근 '돈의동 사랑의 쉼터'에 도움을 청해 박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를 찾는다는 전화를 받은 박 할아버지가 한달음에 쉼터 사무실을 찾았다. 매주 목욕탕에 가는 것도 거르지 않고 적어도 석 달에 한 번은 1만원을 주고 염색과 이발을 하는 깔끔한 외모는 여전했지만 전보다 거동이 힘들어 보였다. 역시나 5년 전 수술을 받은 고관절이 말썽이라고 했다.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매일 새벽 4시30분에 찾던 삼청공원에도 이제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


"이제는 작은 언덕도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차서 못 다녀. 그래도 저거(전동휠체어) 있으니 경사진 길은 그거 타고 조금 걸어서 매일 삼청공원 다니지."
 박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쉼터에 또 다른 쪽방촌 주민이 찾아왔다. 박 할아버지는 "내 앞집 사는 동생인데 요새 좋은 일 해"라며 백 할아버지를 소개했다.


얼마 전 만들어진 쪽방촌 봉사단이라고 했다. 백 할아버지는 매주 한 번 모여서 쪽방촌 청소도 하고 고장난 문이나 수도꼭지를 고쳐준다고 했다. 한 달에 만원씩 모아서 기초생활수급자보다도 사정이 더 어려운 비수급자들에게 음식도 전하고 문병도 가고 상을 당하면 장례도 치러줄 거라고.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 보면 그래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들 안심될 거란 생각에 시작했는데 일단은 동네 청소부터 하고 있다. 쪽방에 사는 사람들 제비 새끼처럼 얻어먹는 데만 익숙한데 이제는 기력이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 돕는 것이 두 발 달린 짐승 도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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