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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앵거스 디턴' 제대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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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앵거스 디턴' 제대로 읽기 조영주 세종취재본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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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Escape'. 1963년 미국의 존 스터지스(John Sturges) 감독이 만든 전쟁영화의 제목이다. 이 영화에서 다양한 캐릭터의 미군과 영국군 전쟁포로들이 땅굴을 파서 수용소 탈출을 시도한다. 대부분의 탈주자는 중도에 붙잡히고 처형을 당한다. 몇몇 탈주자만이 자유의 땅에 발을 디딘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대탈주'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다.


50년 만에 같은 제목의 책이 미국에서 쓰여졌다. 2013년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이 책은 '위대한 탈출'이란 제목으로 번역됐다. 디턴은 영화 대탈주에서 책 제목을 따왔다. 강연을 할 때에도 자주 영화 스토리에 빗댄다. 수용소에서 탈출에 성공한 사람, 도중에 죽음을 맞은 사람, 수용소에 남겨진 사람. 이들의 모습이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인류의 도전과 마찬가지라는 점 때문이다.

디턴은 지난 12일 올해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일찍부터 소비이론과 응용 계량경제학을 통해 이름을 날렸다. 소득이 크게 늘어나도 소비가 그만큼 많아지지 않는다는 이론 '디턴 패러독스(Deaton Paradox)'로 유명하다. 그가 1980년 존 무엘바우어 옥스퍼드대 교수와 함께 고안한 수요측정 방식 AIDS(Almost Ideal Demand System) 모델에서는 개별상품에 대한 수요를 모든 상품 가격, 개인 소득과 연결시키는 접근법을 적용하기도 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그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빈곤을 줄이고 복지를 증진시키는 경제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소비성향을 이해해야 한다"며 "디턴의 이론은 어느 경제학 이론보다 이 부분을 잘 설명한다"고 밝혔다.

디턴의 연구영역은 역사학과 인구통계학으로 넓어졌다. 그가 말하는 위대한 탈출도 이 같은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책은 부와 건강, 수명, 빈곤의 상관관계에서 시작해 죽음과 빈곤에서 대탈출을 감행한 인류, 이 과정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을 다뤘다.


요약하자면 '기술발전과 경제성장으로 많은 사람이 죽음과 빈곤으로부터 탈출에 성공했지만 지역 간 불평등, 지역 내 불평등은 매우 심각해졌다'다. 책 말미에는 선진국의 원조정책을 비판하면서, '아직도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디턴은 '불평등'이 양면성을 띄고 있다고 강조한다. 과도한 불평등은 공공서비스 붕괴와 민주주의의 후퇴 등 부작용을 가져오지만 좋은 불평등은 성공의 결과물이자 성공의 길로 이끄는 자극제라는 것이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성공은 불평등을 낳는다"면서도 "그렇다고 성공을 가로막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턴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사회주의 이론에 맞선 자본주의 승리처럼 흥분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해 세계를 뒤흔들었던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대척점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주장은 낡은 이데올로기, 진영논리의 틀 속에 인류의 미래를 가두려는 발상이다. 피케티를 사회주의자로, 디턴을 자본주의 숭배자로 규정하는 것을 두 사람 모두 거부할 것이다. 디턴 역시 "그는 부에 대해, 나는 건강과 소득에 대해 썼다. 세상이 불평등하다는 점에 관해서는 나와 피케티 교수의 생각은 같다"고 언급했다.


자본주의 발전과 그에 따른 문제점을 자신의 관점과 접근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일 뿐 그들이 추구하는 인류의 미래는 다르지 않다. 그들의 이론은 완결형이 아니다. 다른 이에 의해 비판받고 보완되는 과정이다. 그러면서 경제학은 발전한다. 그들이 말하는 미래도 100년 뒤 또는 500년 뒤 상상 속의 유토피아 같은 온전한 모습은 아니다. 디턴은 이렇게 위대한 탈출을 맺는다.


"앞으로 나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새 탈주자들은 이전 탈주자처럼 새로운 불평등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 인류가 지혜를 모아 미래에도 이런 장애를 잘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






조영주 세종취재본부팀장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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