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삶이 나아졌다. 더 많은 사람이 부유해졌고 지독하게 가난한 사람의 수는 줄어들었으며 평균수명도 증가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수백만명이 끔찍한 빈곤과 영유아 사망을 경험하는 게 사실이다. 한 마디로 이 세계는 너무나 불평등하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70)는 저서 '위대한 탈출: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진시키나'의 서문에서 고민의 시작점을 이렇게 적었다. 그러면서 국가 간 불평등, 국내 불평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상호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분석해 그 해법을 찾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그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복지를 증진하고 빈곤을 줄이는 경제정책을 고안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선택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디턴 교수는 그 누구보다도 이 같은 이해 증진에 기여해왔다"고 밝혔다.
디턴 교수는 먼저, "인간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탈출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어 "나는 빈곤과 죽음으로부터의 탈출을 꼽고 싶다"면서도 "아직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구상에는 10억명 정도가 빈곤에 시달리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수명도 짧다는 것이다.
그는 선진국의 경우, 저임금 국가와의 경쟁 외에도 기술의 변화에 직면해 일자리와 소득의 양극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세금과 재분배 시스템은 최근 불평등 증가를 막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또 중국과 인도의 평균소득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 안의 불평등이 확산되면, 성장이 느려지고 세계적 소득 불평등도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디턴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빈곤과 짧은 수명에서 벗어났지만 이것이 오늘날 불공평한 세상을 탄생시켰고, 이 불공평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아이러니하게도 '불평등에 의한 성장'에서 찾고 있다. 고속성장한 중국에서 경제불평등이 크지만 절대빈곤층이 줄고 중산층이 대거 탄생한 것이 한 예다. 또 누가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면 이를 따라잡기 위해 나도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는 "불평등이 성장의 결과이면서 성장과 진보를 이끌어 낸다"며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부자가 될 수는 없지만, 정치적 불평등 때문에 소득이 낮은 사람이 가난과 질병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선진국의 후진국 원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일례로 2008년에 8억명이 절대빈곤에 시달렸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루 2억2400만달러가 필요했다. 미국인 가운데 어린이를 제외하고 하루에 1달러씩 지불하면 지구상의 절대빈곤을 없앨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원조가 일부 나라에서 빈곤해결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빈곤이 자원이나 기회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열악한 제도와 미숙한 정부, 유해한 정치 때문이라면 가난한 나라에, 특히 가난한 나라의 정부에 돈을 줄 경우 빈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길어지고 영구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선정 이후 미국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경제 성장 과정에서 형성되는 불평등에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함께 있다"며 "부의 불평등 현상을 무조건 나쁜 쪽으로만 파악해선 안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경제적 성공(성장)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할 수도 있는데 이같은 성공을 막을 이유는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턴 교수는 빈곤 문제를 연구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가난했기 때문에) 대학생이 된 뒤에도 나는 돈이 늘 부족했다"고 답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영국의 에딘버러 시절에 대해서도 "제대로 성장하기에 늘 춥고 지저분하고 끔찍했던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디턴 교수는 노벨상 경제학상 수상을 예상했는 지에 대해 "내가 (경제학 중 다른) 분야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상을 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한편, 디턴 교수는 지난해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교수와 대척점에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부에 대해, 나는 건강과 소득에 대해 썼다"며 "세상이 불평등하다는 점에 관해서는 나와 피케티 교수의 생각은 같다"고 강조했다.
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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