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솔직히 '셀(sell·매도)' 보고서 내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최근 만난 A증권사 최고경영자(CEO)의 말은 일견 수긍할 만했다. 배석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CEO는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투자의견 매도 등급의 리포트를 내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맞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당장 분위기를 바꾸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대기업과 증권사, 운용사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고객'이라는 이유에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신 있는 애널리스트도 몸을 사리게 돼 있다. 자칫 '독고다이(단독)' 행보를 보였다가 애널리스트에게 생명과 같은 정보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정보 제공을 꺼릴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점점 '이너써클(inner circle)'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공식적인 탐방 외에도 수시로 기업 관계자를 만나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며 "기업은 회사의 최대 법인 고객이라서 애널리스트가 상대적 을의 입장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내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 실종 이슈는 국정감사철 단골 메뉴다. 이번에도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이 국내 진출한 외국계 증권사와의 비교 수치를 들이 밀었다.
10대 국내 증권사는 최근 5년 동안 총 4만9580건의 보고서를 냈는데 이중 매수·중립 의견이 총 4만9557건으로 전체 99%에 달하는 반면 매도 의견은 단 23건으로 0.1% 미만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10대 외국계 증권사는 같은 기간 총 1만8707건의 리포트 중 매수·중립 의견 1만6872건(90.2%), 매도 의견 1835건(9.8%)으로 대조를 보였다고 전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내외 증권사 간 의견 개진에 문화 차이가 엄연히 있어 절대적 수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법인 고객 눈치보기 행태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6개월 동안 투자의견 하향 보고서 242건 중 매도 의견은 하이투자증권(삼성중공업) NH투자증권(롯데케미칼·한샘) 한화투자증권(SK) 등 3개 증권사 4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매수에서 중립 또는 보유로 낮춘 보고서였다.
A증권사 CEO는 "애널리스트의 투자의견이 강력매수면 주식을 사도 좋다는 뜻, 매수면 사실상 중립 의견, 중립이나 보유면 비중을 줄여나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현실적"이라고 전했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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