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할 땐 문제가 되지만 생존 위한 고육지책일 수도"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박미주 기자]다음주 국정감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 국회의원은 "금융투자회사 임직원의 자기매매는 시장 신뢰도 저하는 물론 고객과의 이해충돌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거액의 손실 발생하면 고객과 회사자금 횡령 등 금융사고도 이어질 개연성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한 증권사의 직원 1인당 연간 매매횟수가 1000회를 넘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같은 지적에 증권사 영업직원인 A씨는 "지나친 자기매매는 물론 문제지만, 모든 증권사 직원을 범죄자로 모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증권사 직원의 자기매매가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란 점 등 현실을 모르는 정치권과 당국의 규제가 증권사 직원들을 더욱 궁지로 몰고 있다. 일각에서는 직원들의 이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또 다른 증권사 한 직원은 "증권사 직원으로서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부티크, 벤처캐피털 등 다른 일거리를 찾아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국내 증권사 임직원이 관행으로 여겼던 자기매매가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제재 방침으로 딜레마에 빠졌다. 당국은 국내 증권사 임직원의 자기매매가 외국계 증권사에 비해 지나치게 빈번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이하 노조)과 증권사 직원들은 증권회사의 왜곡된 성과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증권사 직원들의 불만은 당국이 기존 자본시장법에 더해 증권사 임직원의 주식매매 횟수를 하루 3회, 월 회전율 500%로 제한하는 내용의 '자기매매 근절 방안'을 발표하면서 불붙었다. 한 번 투자한 종목은 최소 5영업일 동안 의무 보유해야 하고 투자는 연간 급여 범위 내에서, 누적 투자금 한도는 5억원으로 설정하는 내용도 담겼다. 당국은 구체적 시행안을 만들어 금융투자협회 모범 규준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노조는 10일 성명서를 발표하며 "금감원이 모든 증권 노동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했다"면서 "일부 과도한 자기매매 결과에 따른 땜질식 처방"이라고 반박했다. 노조는 이어 "본ㆍ지점 간 임금 구조와 차별을 해소하고 동일한 임금테이블에 따른 안정적인 급여 체계를 확립하는 등 근본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자기매매 통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금감원이 나서 금융회사가 직원들에게 과잉된 영업을 하지 않도록 관리 감독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기매매의 근본적 원인인 과도한 성과주의와 손익분기점(BEP) 달성을 위한 약정 강요 문제를 해소하는 게 먼저란 주장이다.
이번 규제가 증권사 직원들의 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증권사 직원 A씨는 "이번 자기매매 근절 방안을 보면 최소 5영업일 주식을 보유하라고 하는데 이는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며 "그 사이 악재가 터졌을 때 주식 매도도 못하고 손실을 바라만 보고 있으라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중복 규제라는 불만도 있다. 증권사 직원 B씨는 "증권사 직원들은 이미 주식매매나 펀드 가입 등에서 엄격한 통제를 받는데 추가 제한은 공산권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며 "시세 조종의 의도가 없었더라도 처벌받을 수 있어 주식매매의 기본인 분할매수, 분할매매 등도 어렵게 됐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다른 외국계와 단순 비교에도 불만을 토로했다. 증권사 한 고위 관계자는 "외국계 회사는 국내에서 투자은행(IB) 업무를 주로 하고 있는 반면 국내 증권사는 브로커리지 비중이 40%를 차지하고 있어 금융당국이 문제로 지적한 단순 비교는 통계적 꼼수"라고 지적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박미주 기자 bey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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