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수십억달러 규모의 석유 보조금 지급을 중단키로 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UAE 정부는 이날 마타르 알-네야디 에너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위원회가 다음달부터 국제 원유 가격 변동에 맞춰 휘발유 가격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는 더 탄탄한 경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UAE 정부는 밝혔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정부 재정이 악화된데 따른 대책이다. UAE는 유가가 배럴당 75달러선을 유지해줘야 재정균형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브렌트유는 56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49달러대에 머물러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에너지 보조금을 줄이라고 요구한 것도 석유 보조금 지급 중단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IMF에 따르면 UAE가 석유 보조금으로 매년 지출하는 금액은 70억달러에 달한다. 가스와 전기까지 포함할 경우 에너지 보조금 지급 비용은 연간 290억달러에 이른다. 290억달러는 UAE 국내총생산(GDP)의 6.6%에 이르는 금액이다.
UAE는 세계에서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다. IMF는 막대한 에너지 보조금이 대규모 온실가스 배출의 원인으로 보고 중동 산유국들에 보조금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UAE 에너지부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UAE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억9965만t에 달했다. 정부는 이중 22%가 자동차에 의해 배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하일 알-마즈루이 에너지 장관은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면 소비가 줄고 대중교통과 친환경 차량 이용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석유 보조금 중단 방침에 UAE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중동의 또 다른 산유국인 쿠웨이트는 올해 초 디젤유에 대한 보조금을 없애려 했다가 계획을 백지화했다. 쿠웨이트 국민들이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UAE의 마즈루이 장관은 UAE의 석유 비용이 평균 소득의 3~4%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격 규제를 풀어도 생활비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유가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중동 국가들의 에너지 보조금 축소는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오만은 산업가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UAE의 7개 토후국 중에서도 아부다비와 두바이는 앞서 일부 전기 에너지에 대한 보조금을 줄였다. 중동 뿐 아니라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이집트 등도 에너지 보조금을 줄였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올해 석유 보조금으로 860억달러를 지출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에너지 보조금 예산이 GDP의 13.2% 수준인 1070억달러에 이른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올해 교육 예산은 580억달러에 불과하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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