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종길의 영화읽기]'손님', 사람은 무서운데 묘사는 우습다

시계아이콘02분 28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서 모티브, 집단 이기주의의 추악함 거칠게 그려
배우들 선 굵은 연기 인상적이지만 섬세한 스토리 표현은 아쉬워

[이종길의 영화읽기]'손님', 사람은 무서운데 묘사는 우습다 영화 '손님' 포스터
AD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국내 관객은 공포영화에 인색하다. 지난 2년 동안 연도별 관객 수 40위권에 진입한 작품이 '컨저링(2013)' 하나뿐이다. 그해 226만2758명으로 27위를 했다. 국산영화의 부진 탓이 크다. 한때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지만 '깜짝쇼' 수준의 천편일률적 작품들이 쏟아지면서 도태됐다. 제작 기피 현상이 생겼을 정도. 씨가 마른 건 아니다. 미스터리,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에 덧입혀져 명맥을 이어간다. 특히 '연가시(2012·451만5833명)', '숨바꼭질(2013·560만4103명)' 등은 우려를 넘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올해 그 바통을 넘겨받을 주자로는 9일 개봉한 '손님'이 손꼽힌다. 판타지와 미스터리에 공포를 덧칠했다. 그 뼈대는 그림형제의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The Pied Piper of Hamelin)'다. 마법 피리를 부는 사나이는 쥐들이 음식을 축내고 사람을 공격하는 작은 도시 하멜른을 찾는다. 그는 쥐들을 없애주면 금화 천 냥을 준다는 시장의 말을 믿고 마법 피리를 이용해 골칫거리를 해결한다. 그런데 시장은 약속한 돈의 일부만 내놓고 사나이를 내쫓는다. 화가 난 사나이는 다시 하멜른으로 간다. 마법 피리로 도시의 아이들을 꾀어내 외딴 동굴로 함께 사라진다.

김광태 감독은 "오래 전부터 다루고 싶었던 이야기"라면서 "'약속'에서 비롯되는 인간관계와 그것이 깨지면서 생기는 집단 이기주의를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골마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붓칠은 매우 잔혹하다. 미래를 빼앗는 수준을 넘어 마을 전체를 파멸로 이끈다. 과한 설정은 그만한 이유가 따라야 관객이 납득한다. 이런 요소가 자주 등장하는 공포와 판타지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국산 공포영화는 빠른 제작의 맛에 취해 자기 복제의 늪에 빠지면서 관객의 신뢰를 잃었다. '손님'의 구조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시대적 배경은 '웰컴 투 동막골(2005)', 전체적인 이야기는 '이끼(2010)'와 '혈의 누(2005)'를 연상케 한다. 모두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 김 감독은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건 없다"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영향이 있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손님', 사람은 무서운데 묘사는 우습다 영화 '손님' 스틸 컷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은 세 영화에 비해 떨어진다. 일단 캐릭터가 단면적이다. 우룡(류승룡)과 촌장(이성민)의 갈등에 집중한 탓에 다른 인물들을 섬세하게 그려내지 못했다. 촌장의 양아들 남수(이준)가 대표적이다.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을 욕심에 아버지가 시키는 것이라면 뭐든지 수행하는 캐릭터지만 정작 촌장과의 관계는 거의 생략됐다. 야욕을 품는 장면도 없다. 미숙(천우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이유 등이 불명확하다. 김 감독은 "우룡과 촌장의 관계에 힘을 줄 필요가 있었다. 영화가 방만하게 흐르는 것도 막아야 했다"고 했다. 그러나 카메라는 우룡과 그의 아들 영남(구승현)의 관계를 필요 이상으로 보여준다. 좋은 식재료를 레시피 없이 뒤죽박죽 섞어놓은 느낌이다. 남수와 미숙의 촬영 분도 영화에 삽입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편집에서 대부분이 잘려나갔으니 경제적인 촬영을 했다고 보기 어렵겠다.


'손님'은 이런 약점을 배우들의 선 굵은 연기로 메운다. 특히 충무로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한 류승룡과 베테랑 이성민이 다양한 표정과 섬세한 묘사로 극을 주도한다. 김 감독은 "실례를 범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캐릭터를 잘 표현해줬다"고 했다. 그는 "생각하는 선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 배우들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감정을 끌어내는 과정 등에서 감독이 어떤 자세를 보여야 하는지를 오히려 배웠다"고 했다. 특히 류승룡은 이번 영화를 위해 16㎏ 정도 몸을 불렸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먹어서 살이 쪘을 정도로 낙천적이고 수완이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했다. 단백질 위주로 잘 먹고 운동을 하면서 전체적으로 몸이 커 보이게 했다"고 했다. 그는 피리 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약 3개월 동안 피리 연습도 했다. 그 덕에 우룡은 시종일관 서늘한 마을 분위기와 괴리감이 있게 비춰진다.


이 영화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메타포다. 김 감독은 6월 9일 압구정 CGV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영화는 현재를 담을 수밖에 없고 담아야 한다"며 "한국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하지만 오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모습이 그 때보다 더 좋아졌는가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월컴투 동막골', '이끼'와 다른 것 같다"고 했다. 동석한 류승룡도 "'피리 부는 사나이'의 모티브를 우리나라에 맞게 고급스러운 비유와 상징으로 녹여낸 것 같다"며 "그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이걸 감독이 의도하고 썼다면 정말 천재다"라고 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손님', 사람은 무서운데 묘사는 우습다 영화 '손님' 스틸 컷


그런데 그들이 가리키는 정치 사회적 메타포는 매우 직접적이다. 욕심에 가득 찬 인간을 사람의 살까지 뜯어먹는 쥐떼로 형상화한 것 정도는 무난하다. 그러나 극 후반에 촌장이 어떤 인물인지를 설명하면서 일본군 장교복과 엔화 뭉치를 보여준다. 쥐떼에 저항하는 그에게 일본검도 쥐어준다. 죽음을 맞는 곳에선 이보다 더 속이 훤히 보이는 장치도 나온다. 메타포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다. 김 감독은 "독재자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려고 마련한 장치"라며 "1950년대에 숨길만한 악행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다가 일본의 앞잡이를 떠올린 것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에 큰 메시지를 담은 건 아니지만 수용자의 견해라면 충분히 받아들이겠다"며 한 발을 뺐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