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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홀라크라시 실험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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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홀라크라시 실험을 응원하며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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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라크라시(holacracy)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익숙하지 않은 것이 당연합니다. 겨우 2007년에서야 만들어진 말이니까요. 그러나 최근 미국 최대의 온라인 신발ㆍ의류 쇼핑 업체인 자포스와 관련된 기사를 통해 이 용어가 제법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자포스의 창업자인 토니 셰이는 지난 3월24일 모든 직원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냅니다. 그는 자포스가 이제 홀라크라시를 경영이념으로 삼을 예정이며, 이에 따라 조직 내의 관리자 직책을 모두 없애고 자포스를 모든 구성원이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경영하는 회사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게다가 만약 이 같은 변화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회사를 떠나라면서 퇴직 패키지를 제안하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직원 가운데 무려 14%에 달하는 210명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이처럼 파란을 일으키면서 널리 알려진 홀라크라시란 일반적으로 조직운영의 기본 원리라고 할 수 있는 수직적인 위계를 거부하는 조직운영 이념을 일컫습니다. 위계를 거부하는 조직이라는 표현이 사실 좀 모순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윌리엄슨이 그의 저서 '시장과 위계'에서 설파한 바대로 조직이라는 것은 위계적 질서로부터 생겨나며 사실 위계 그 자체가 조직이라고도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홀라크라시의 개념은 브라이언 로버트슨이라는, 이제 고작 35세인 한 남자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과학영재학교를 다니다 그만둔 다음 독학으로 대학에 들어갔다가 다시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그 후 18세의 나이로 천재적인 프로그래머로 명성을 날리게 되면서 그는 자신이 겪은 학교와 기업들의 조직운영원리에 대한 상당한 회의를 갖게 됩니다. 엉뚱하게도 그는 무정부적인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순전히 이런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 몇 개의 소프트웨어 기업을 창업해 성공적으로 운영합니다. 그는 마침내 2010년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홀라크라시 헌장'이라는 문서로 작성했는데 이 문서는 그 이후 홀라크라시를 체험한 많은 참여자들의 집단작업을 통해 계속 수정보완되고 있습니다. 헌장의 반향은 적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300여개가 넘는 영리 및 비영리 조직이 홀라크라시를 조직의 운영원리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홀라크라시 헌장을 살펴보면 홀라크라시가 완전한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나름 체계적인 운영원칙을 강조합니다. 홀라크라시는 각 구성원들이 조직 내에서 고정된 직무를 수행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데 그 핵심이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맡게 될 역할은 해당 구성원이 소속된 작은 단위의 조직(circle)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정의하며, 어떤 역할을 맡은 사람은 위계적인 의사결정구조가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또 그 결과에 대한 포괄적인 책임을 지게 됩니다.


홀라크라시의 지지자들은 이런 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면 조직의 구성원들은 좀 더 많이,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조직은 관료주의를 벗어나 보다 유연하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반면 홀라크라시의 비판자들은 조직이 거시적인 관점을 잃고 개별 하부단위 간의 고립된 의사결정에 따라 혼란을 겪게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홀라크라시의 실험을 내심 응원하고 있습니다. 게리 하멜이 말한 것처럼 스스로의 결정으로 집도 사고 차도 사는 성인이, 조직 내에서는 아주 사소한 일도 몇 단계의 결재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고, 어찌 보면 인간을 왜소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인간의 상호존중이라는 기분 좋은 말이 실제로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두근거리며 지켜보렵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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