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세상에 이런 일'을 종종 겪기 마련이다. 황당하거나 놀랍거나 때론 기막히거나. 며칠 전 지방 여정도 바로 '이런 일'이었다. 조문(弔問)을 위해 동료 직원들과 회사 승합차에 몸을 싣고 서울을 빠져나갈 때만 해도 분위기는 말끔했다. 왕복 4시간의 긴 여정이지만 승합차는 전용차선을 미끄러지듯 달렸다.
사달이 난 것은 고속도로 진입 10여분 전. 갑자기 에어컨이 꺼지고 계기판이 먹통되더니 엔진이 웩웩 헛구역질을 해대는 거다. 부랴부랴 갓길로 차를 대는데 결국 엔진이 멈춰서고 말았다. 아니 쌍팔년도도 아닌 데 길에서 차가 퍼지다니, 만약 전용차선에서 엔진이 꺼졌다면 어쩔 뻔 했냐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잠시. 길 한복판에 퍼질러진 이 상황을 또 어찌해야 하나 황당함이 쓰나미를 이뤘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가는 '배달의 민족'이 아니던가. 보험사에 전화를 건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저만치서 견인차가 개선장군처럼 등장했다. 차를 수리해 다시 출발하기까지는 1시간 남짓 걸렸다. 수리공의 말이 걸작이다. "제너레이터(발전기)가 망가졌는데도 1시간 내 해결하는 것은 우리나라니까 가능하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세상에 이런 일'은 '배달 문화'로 집약된다. '자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전설적인 광고 카피가 증언하듯 운동장이든 공원이든 바닷가든 전화 한 통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이 넙죽 대령한다. 길이 난 곳이면 중국집 오토바이가 달리고, 치킨 집 오토바이도 달리고, 야식 오토바이까지 달린다. 그 뿐인가. 전화 한 통이면 대리 기사가 달려오고, 전화 한 통이면 한 달 무이자에 몇백만 원이 통장에 바로 꽂힌다(광고 내용대로라면).
음식과 서비스와 사람과 돈까지 배달해주는 대한민국의 배달문화. 정색하고 분석하면 '빨리빨리'라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와 밀집된 도시 환경, 발달한 통신기술, 1~2인 가구가 늘어나는 시대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산업 사이클로 보면 배달산업은 태동기를 넘어 성장기에 진입했다. 앞으로 성숙기, 쇠퇴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다. 지금보다 더 많은 무언가를 배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과연 무엇일까. 무엇들일까. 엉뚱한 생각이 불쑥 끼어든다. 스트레스에 찌든 직장인들에게 휴식과 안락도 배달이 될까. 혼기 꽉 찬 그녀에게 '백마 탄(아니 조랑말이라도 탄) 왕자'도 배달이 될까. 삭막한 이 사회에 사랑과 희망과 정의와 양심이라는 선물도 배달이 될까. 세상에 이런 배달이!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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