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칼날 피하고자 '비자금' 카드…불법 논란 감수한 계산된 발언 분석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정무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다. 정치적 수읽기에 능하다. 판단을 내리면 실천에 거침이 없다. 2011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는 '반한나라당' 성향이 뚜렷한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에 전격 출연하기도 했다.
홍 지사의 유연함은 정치적 자산이다. 반면 홍 지사 모습을 놓고 선이 굵은 정치와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치적 수읽기에 능하다는 의미는 거꾸로 '잔꾀'로 비치기도 한다.
최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둘러싼 검찰 수사에서도 이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2011년 7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 자금 의혹이다. 검찰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1억원이 당시 대표 경선자금으로 쓰였다고 보고 있다.
홍 지사는 궁지에 몰리자 묘수(?)를 꺼내들었다. 아내 비자금 의혹이다. 홍 지사는 11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그는 "기탁금 1억2000만원은 아내가 몰래 모아둔 비자금"이라고 밝혔다. 정치인이 비자금 의혹을 자진해서 밝히는 것은 이례적인 대목이다.
홍 지사는 "내가 11년간 변호사를 하면서 번 돈 일부와 2008년 국회운영위원장을 할 때 국회 대책비 월 4000만~5000만원 일부를 생활비로 준 것 등을 아내가 조금씩 모아 은행 대여금고에 넣어뒀다"고 설명했다. 국민 혈세로 조성된 '국회 대책비'가 생활비로 둔갑한 것은 논란을 자초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특수활동비인 국회대책비 일부를 아내에게 생활비로 줬다는 발언은 '업무상 횡령'에 해당될 수 있다. 아내 비자금 발언은 공직자 재산신고 누락과 직결되는 문제다. 재산신고 누락은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홍 지사 발언은 '실언'으로 보기 어렵다. 그는 기자간담회를 자청해서 발언했다. 홍 지사는 정치인 중에서도 정무적 판단능력이 손꼽히는 인물이다. 손해볼 행동을 앞뒤 재지 않고 자처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국회 대책비를 생활비로 줬다는 부분은 2013년 이동흡 헌법재판관 후보자 사례와 유사하다. 당시 이 후보자는 특정업무경비를 개인계좌에 넣고 개인 돈과 섞어 사용한 게 문제가 돼 후보를 사퇴한 바 있다.
최진녕 변호사는 "이동흡 후보자는 참여연대 등의 고발로 검찰수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면서 "홍 지사 발언은 자충수로 볼 수도 있지만 (이동흡 사례를 염두에 두고) 법률적으로 고도의 계산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홍 지사를 짓누르는 가장 큰 부담은 성 전 회장의 1억원 수수 의혹이다. 홍 지사 비자금 발언이 근거가 있다면 최대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비자금 문제 역시 처벌을 면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부장검사 출신 김경진 변호사는 "돈이 전달됐다는 일시와 장소가 특정돼야 처벌할 수 있는데 비자금 대여금고에 언제 돈이 들어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경우 법률적으로는 수사 불가상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홍 지사 선택은 '잔꾀'로 비칠 수 있다. 여론의 판단은 법적인 잣대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사건을 진흙탕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칠 지가 중요한 부분이다.
이번 사건은 대권을 준비하는 홍 지사 입장에서는 쓰라린 '주홍글씨'가 될 수 있다. 역대 대통령의 공통점은 시대정신을 관통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홍 지사의 행보를 보며 시대정신을 이끌 '큰 그릇'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궁금한 대목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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