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민파동과 비슷한 전개, 대처는 완전히 달라
-해태제과 적극적 조치로 석달 만에 매출 회복
-내츄럴엔도텍은 소비자원 발표 즉시 반론
-존슨앤드존슨 타이레놀 vs 포드·파이어스톤 결함은폐 극과 극
-땅콩회항, 남양유업 파문 등 위기대응도 명암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2008년 9월 말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한 발표로 해태제과와 식품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해태제과에서 판매하고 있는 중국산 주문자생산(OEM) 제품인 '미사랑 카스타드'에서 멜라민 성분이 검출됐고 '미사랑 코코넛' 제품에서도 멜라민이 추가 검출됐다는 발표가 나온 것이다.
이물질 혼입, 광우병, 중국산 분유 멜라민 혼입 등 각종 식품 관련 이슈 도출이 반복되면서 식품 안전에 관한 국민의 관심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에서 해당 기업들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내부적으로도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해태제과는 식약청의 발표 즉시 내부 품질관리 심사 기구인 안전보장원을 중심으로 대표이사, 영업, 생산, 수입, 마케팅, 홍보 담당 임직원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을 가동했다.
정확한 원인 분석과 경위 파악도 중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국민의 안전 확보였다. 전국 2500여명의 영업사원이 유통기한을 구분하지 않고 '미사랑 카스타드' '미사랑 코코넛' 제품의 국내 유통량 전량에 대해 즉각 리콜을 실시했다. 본사 직원을 포함한 3500여명의 임직원이 전국 각 지역으로 배치돼 해당 구역 영업사원과 3~5명으로 구성된 조를 이뤄 모든 직간접 거래처 및 해당 구역 내 모든 도·소매점에 대한 회수 확인 방문에 나섰다.
직접 거래처에 대해서는 회수가 거의 완료가 된 상태이지만 오지와 간접거래처 등 외딴 곳에 있는 점포들까지의 보다 철저하고 확실한 회수 작업을 통해 빠른 시간 내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다.
멜라민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지만 해당 제품들과 같은 업체의 유원료를 사용해 다른 제조업체에서 생산된 오트웰 제품도 회수해 모두 소각했다. 중국 OEM업체와의 거래를 중단하고 즉각적인 원인 조사를 위한 인력 파견과 함께 법적 대응을 했다.
신문광고와 홈페이지 게시를 통해서는 정중한 사과와 함께 멜라민이 검출된 제품에 대한 고지, 회수진행상황, 폐기처리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해당 제품 발견 시에 연락할 회사 전화번호를 같이 고지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멜라민 검출 발표와 함께 전년 대비 30% 수준까지 떨어졌던 2008년 10~12월 기간 중 월 매출이 3개월 만인 2009년 1월에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
통상 기업의 위기는 사전경고 단계를 거쳐 찾아오지만 식품 안전과 관련된 위기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멜라민 파동과 백수오 사태는 위기의 단초와 확산의 전개 과정이 비슷하지만 위기 대처는 전혀 달랐다. 결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한국소비자원의 발표가 난 날 내츄럴엔도텍은 곧바로 공시를 통해 "소비자원 조사 결과에 대한 신빙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제3의 기관에 공동 조사 등을 요청했고 법원에 조사 결과 공표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상황이 파악되지 않고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섣불리 확인이나 확신을 함으로써 더 큰 위기를 불러왔다.
반면에 축적된 노하우와 선험(先驗)을 통해 기민한 대응에 성공한 기업도 있다. 2010년 파리바게뜨 식빵에서 쥐 몸통이 나왔다는 글과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자 회사 측은 곧바로 전문가들을 모아 놓고 사진을 분석해 제조자의 주장이 허위이며 제조공정상 그런 이물질이 그런 형태로 유입될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사건 발생 반나절 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를 의뢰해 결국 경쟁제과점 주인의 자작극임을 밝혀냈다.
사고 원인별 위기는 대체로 ▲돌발상황 발생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둔감 ▲미숙한 대응 등으로 구분된다. 백수오 사태의 경우 돌발상황 발생에 포함될 수 있으며 대표적 성공 사례로는 존슨앤드존슨의 타이레놀 사건이 있다. 이 회사는 1982년 정신병자가 일으킨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으로 사망자가 발생하자 2억4000만달러(2600억원)를 들여 출시한 제품을 전량 회수해 폐기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었다. 실패 사례로는 1999년 49명의 피폭자가 발생한 일본 도카이무라 방사능 누출 사고가 있다.
위기 관리에서도 가장 어려운 대상은 오너나 최고경영자(CEO) 관련 위기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은 돌발상황이었으나 처음부터 상황 파악에 제약을 받아 미숙한 대응으로 일관했다가 사태가 커졌다. 마우나리조트 사고가 나자 이웅열 코오롱 회장이 사건현장으로 달려가 사태를 조기에 수습한 것과 달리 오룡호 침몰 사고에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이 수색과 보상에 모든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영업사원의 막말 파문을 일으킨 남양유업은 대국민사과에 최대주주이자 실질적으로 남양유업을 이끌고 있는 홍원식 회장이 불참해 남양유업의 사과가 여론 무마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위기 관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단지 위기를 악재로만 간주해 감추려고만 했을 뿐 위기를 사전에 예방하고 위기 상황을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대처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위기 관리 전문가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아무리 준비하고 연습해도 일사불란함을 기대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면서 "사람들이 잘 살기 위해 죽음의 순간을 떠올려 보듯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것은 기업의 위기 관리를 성공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한편 주요 기업들은 위기관리 전담조직과 인력을 갖추면서 실시간으로 전 방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이 그룹 내 핵심사안 및 위기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실 내부에 삼성전자를 담당하는 전략1팀과 비 전자계열사를 담당하는 전략2팀이 금융계열사를 제외한 삼성그룹의 전 계열사의 위기관리를 맡고 있다.
조직 구성상 미래전략실이 직접 계열사들을 지휘하는 형태는 아니고 각 계열사 재무, 법무 라인 등과 함께 위기 대응에 주력하고 있다. 책임자는 최지성 미래전략실장이며 그룹의 각종 위기 사안을 특유의 추진력으로 정리하며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그룹별 핵심 사안은 기획조정실이 맡고 있다. 70~80명의 인원이 배치된 상태로 각종 사안을 직접 나서 챙기는 것보다 상황에 따라 관련 부서와의 협업을 이끄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책임은 정몽구 회장을 보좌하는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용환 전략기획담당 부회장이다. 2010년 정 회장이 숙원이었던 현대건설을 현대차그룹 품으로 가져오고 지난해 한전부지 인수전 역시 가장 가까이서 챙기며 그룹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화그룹은 위기 컨트롤타워 등의 별도 대응 조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각 계열사별로 위기 사안에 따른 매뉴얼이 갖춰져있어 이에 맞춰 대응하고 있다. CJ그룹은 작년 6월 각 계열사별 안전관리 체계를 통합해 그룹차원의 안전 전담 조직인 '안전경영실'을 신설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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