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재연 기자] 소속 보험설계사가 가짜 보험계약서를 쓰고 보험금을 빼돌리는 식으로 사기를 쳤다면 보험사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판사 윤강열)는 김모씨와 그의 부모 등 3명이 삼성생명보험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모두 2억16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김씨 가족은 17년동안 삼성생명에서 일한 보험설계사 변모씨에게 사기를 당했다. 변씨는 2008년 4월 김씨 가족의 서명을 받아 삼성생명의 보험상품 계약서를 쓰고 2013년 5월까지 총 5억5000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변씨는 김씨 가족이 보험료를 낼 때마다 자신이 꾸민 영수증에 회사 대표이사 직인을 오려붙이는 수법으로 총 21차례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건넸다.
변씨는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말 1심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김씨 가족은 삼성생명 소속 보험설계사인 변씨가 이 회사의 보험을 모집한다고 속여 손해를 끼쳤으므로 회사 측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생명 측은 변씨가 실제로 보험을 모집한 것이 아니므로 보험업법상 보험사의 배상 책임이 있는 '모집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김씨 등에게 사기를 알아차리지 못한 과실이 있으므로 회사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대법원의 판례를 적용, "보험업법상 보험사의 배상 책임을 규정한 '모집행위'란 실제 모집이 아니라도 그 행위를 외형적으로 관찰할 때 모집행위의 범위 내에 속하는 것과 같이 보이는 행위도 포함한다"고 밝혔다.
또 "변씨가 회사의 양식으로 된 허위의 보험계약청약서를 작성하게 하고 회사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회사 명의로 된 영수증을 작성해 준 뒤 보험료를 받는 등의 행위는 외형상 모집행위로 보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변씨의 행위가 진정으로 오인될 만한 외형을 갖춘 점이나 원고들이 피고가 주최하는 VIP 고객 골프대회에 초대받기도 한 점 등을 볼 때 원고들의 중대한 과실로 허위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원고들이 보험증권과 약관을 받지 않은 점, 거액의 보험료를 납부하면서 보험사 계좌로 이체한 것이 아니라 변씨의 개인 계좌로 이체한 점 등을 고려해 보험사의 배상 책임을 손해액의 50%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김재연 기자 ukebid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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