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은 뛰어난 법적지식? 국민존경이 더 중요…박상옥 국회 인사청문회 열렸지만 가시밭길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존경과 신뢰가 따르지 못한다면 아무리 법적 전문지식이 뛰어나다 해도 국민들은 결코 진정한 법관으로 여기지 않는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 1일 신임 법관 52명에게 임명장을 전하면서 덕담을 건넸다. 양 대법원장은 말 속에 뼈가 있는 조언들을 이어갔다. 하나하나 되새길만한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 양 대법원장은 법관의 기본 덕목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폭넓은 경험과 견문으로 세상사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원숙한 경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이해심과 포용력, 균형감각에 기초한 공정한 안목 등 고귀한 덕목을 갖춘 지혜로운 인격자이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요구이다.”
양 대법원장은 법관으로서 가야 할 ‘길’에 대해 제시했다.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는 그들의 편을 들어주라는 의미가 아니라 힘없는 이들이라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대법원장이 신임 법관에게 바른 법관의 길을 강조할 무렵 대법원은 신임 대법관 국회 인준 문제로 고민을 이어갔다.
검찰 출신인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담당 검사라는 전력이 드러나면서 국회 인사청문회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를 비롯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박상옥 대법관 불가론’의 불을 지폈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천주교인권위원회,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추모단체연대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입을 모아 ‘박상옥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대법원은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사회 구성원을 보호해야 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박상옥 후보자는 고문을 당한 끝에 억울하게 죽어간 한 대학생의 가해자와, 그 가해자를 숨기려는 시도를 알면서도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했다”면서 박상옥 후보자는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사단체의 ‘박상옥 불가론’은 대법관으로서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을 인물인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이러한 지적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대법원장이 신임 법관 앞에서 전했던 ‘법관의 길’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이유로 다른 관점에서 주장을 전개했지만 결론에 담긴 의미는 유사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양 대법원장은 지난 1일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압력이나 영향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불굴의 용기와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이 ‘재판 독립’을 수호하는 가장 확실한 길로 제시한 게 ‘국민 신뢰’다. 결국 법관은 국민이 존경할 품성을 지닌 인물, 사회를 담아낼 그릇을 지닌 인물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는 우여곡절 끝에 7일 열렸다. 인사청문요청서가 국회에 제출된 지 72일만이다. 박상옥 후보자는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축소 의혹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는 “알면서도 진실 은폐에 관여하는 등 검찰의 본분을 저버리는 처신을 결코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박상옥 후보자는 결백을 강조했지만, 법조계 안팎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인사청문회 개최는 성공했지만, ‘상처뿐인 영광’으로 정리될 가능성도 있다. 어렵게 국회 인준을 받더라도 앞으로 대법원장으로서 국민의 존경을 받으면서 ‘사회의 방향타’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신임 법관들에게 건넨 덕담은 박상옥 후보자를 겨냥한 얘기가 아님에도 결과적으로 부메랑이 돼 버렸다. 법관이 가야 할 바른 길은 신임 법관은 물론 '최고법원'의 대법관 역할을 해야 할 이들에게는 더욱 더 곱씹어야 할 교훈이기 때문이다. 양 대법관이 건넨 덕담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과연 다른 사람을 심판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스스로를 연마하며 자세를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 법관의 자세이다. 우리의 영원한 사표이신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께서는 ‘법관으로서의 본분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될 때는 사법부를 용감히 떠나라’라는 서릿발 같은 말씀으로 법관의 길을 제시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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