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형 "누가 뺏어갈까 꼭 껴안고 있었던 작품"
윤여정 "이 주인공처럼 살다 죽었으면...싶더라구요."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영화 '장수상회(9일 개봉)'의 주인공은 '성칠'과 '금님'이다. '성칠'은 앞집으로 이사 온 꽃집 주인 '금님'을 마음에 품고 있고, 이런 '성칠'에게 '금님'은 밥을 사달라고 제안한다. 만반의 준비를 한 첫 데이트 날, 연애 초보인 '성칠'은 떨리면서도 어색한 마음을 감출 수 없고, '금님'은 이런 그를 바라보며 수줍은 듯 웃는다. 영락없는 여느 영화 속 연인들의 모습이다. 다만 이들이 칠십대 노인들이란 점이 다르다면 다를 뿐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유행가 가사(오승근 '내 나이가 어때서')도 떠오른다.
영화에서 '성칠'은 배우 박근형(75)이, '금님'은 윤여정(68)이 연기한다. 1971년 드라마 '장희빈'에서 숙종과 장희빈으로 호흡을 맞춘 이후 거의 44년 만의 해후다.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박근형은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충무로에서 노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드문 상황에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나이에 주인공을 맡을 일은 이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강제규 감독(53)이 다시 불러줬으니 죽기살기로 하는 수밖에요."
1959년에 연극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하고, 1963년 KBS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박근형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이백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선굵은 연기를 보여줬다. 최근 들어서는 주로 각종 드라마에서 중후하고 카리스마있는 '회장님' 역을 많이 맡아 한국의 '알파치노'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그는 늘 한정된 캐릭터 연기만 주어진 것에 대해 "분하다"고 했다. "그동안 다양한 장르의 역할을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었다고 과감하게 연기를 맡기는 사람들이 없으니 서운했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맡게 된 '장수상회'는 "행여나 누가 뺏어갈까 꼭 껴안고 있었던" 작품이다.
박근형이 이번 영화를 위해 오십여 년 전 연극학도 시절로 돌아가 "한 장면 한 장면을 철저하게 계산해가며" 주인공의 감정을 쌓아나갔다면, 윤여정은 그저 물흐르듯 자연스럽다. 임상수('바람난 가족', '하녀', '돈의 맛'), 이재용('여배우들'), 홍상수('다른 나라에서', '자유의 언덕') 등 충무로 명감독들의 뮤즈로 여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여배우답게 솔직하고 거침없었다. 그는 "강제규 감독이 전쟁영화를 많이 선보인 사람이라서 이 영화를 잘 찍을지 주변에서 우려도 하던데, 아무 의심없이 믿음을 갖고 했다. 모든 감독은 다 섬세하다"며 "내가 작품의 축이 된 건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감독들의 '뮤즈'라는 칭호에는 손사래를 쳤고, 내년이면 일흔이 되는 나이에 대해서는 "만으로는 여전히 육십대"라고 정정했다.
영화는 초반에는 황혼에 찾아온 로맨스를 달달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내지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가슴 뭉클한 반전을 담아냈다. "마지막 촬영을 하면서 박근형 선생님한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참 아름답겠다'라고.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도 '그러게'라고 답하시더라고요. 누구나 죽는 게 무섭고 두렵잖아요. 한 번도 안 가본 길이니까. 그런 것을 곁에 있는 사람과 같이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도 육십이 되고나서부터 '이제는 모든 것을 느끼면서, 즐기면서 살아야지' 마음 먹었어요. 이제 애들도 다 키워놓았으니 내 임무를 다했다 싶은 거죠. 그전까지는 생계를 위해서 들어오는 대로 일을 했거든요. 아프지 않고 아쉽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어요."
두 배우의 연기 경력을 합하면 103년이다. 오랜만에 만나 호흡을 맞춘 파트너에 대해 박근형이 "함께 골목길에서 비를 피하다가 귀퉁이에 핀 꽃을 바라보는 장면을 찍는데, 그 감정씬이 참 아기자기하면서 설레고 좋았다"고 말할 때 그의 눈이 소년처럼 반짝 빛났다. "우리 문화가 나이 든 배우들을 자원으로 잘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버리는 풍토가 있어요. '장수상회'를 성공시켜 놓아야 영화계 종사자들이 중견 배우들이 필요하다고 느낄텐데..."
윤여정은 "박근형 선생님은 끼도 많고 감성이 풍부한, 타고난 배우"라며 "워낙 연기를 잘하는 분인데, 요즘에서야 더욱 인정받게 됐다. 그래서 내가 시사회 끝나고 '선배님은 좋겠네. 이번에 남우주연상 노려봐'라고 말했다"며 웃었다. 황혼 로맨스에 대해 묻자 특유의 솔직함으로 답했다. "이 나이가 되면 흥망성쇠를 다 겪었기 때문에 무모한 짓을 또 다시 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는 왜 이렇게들 멜로에 목을 매나 몰라. 따지고 보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거면 모든 게 다 멜로잖아요. 사랑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하다고 하는 게 아닐까요." 인터뷰 내내 박근형은 핫하고, 윤여정은 쿨했다. (인터뷰는 지난 30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따로따로 진행됐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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