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해외금융' 판 키우기 신호탄
전자에서 금융까지…美카드사 CEO·페이팔 창업자 잇단 회동후 첫 결실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CITIC(중신)그룹 창쩐밍 동사장(董事長)을 만나 삼성과 CITIC그룹간 금융사업 협력 확대 방안에 대해 합의한 것은 그동안 금융권으로 활동영역을 확대해 온 이 부회장의 첫 결실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글로벌 금융 관계자들을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해 온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번에는 합의를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일궈낸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번 성과를 계기로 삼성전자로 쌓아 온 '글로벌 삼성' DNA(유전자)를 금융계열사로 본격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들은 아직까지 해외 시장에서는 영향력이 미미하다. 해외에 진출했다 실패한 아픈 경험도 있다. 그러나 비좁은 내수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리며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 이 부회장의 지론이다. 삼성전자가 애플 등 해외 기업들과 경쟁하며 부쩍 성장한 것처럼, 금융계열사도 이제는 해외 시장서 수익을 낼 시점이라는 것이다.
금융 산업은 제조업과는 성격이 달라 기술력으로만 승부하긴 어렵다. 해당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파악해야 하고, 인맥 네트워크도 상당히 중요한 산업이다. 이 부회장이 최근 들어 직접 나서고 있는 것도 이같은 배경을 잘 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최근 본인의 인맥은 물론, 오너가라는 지위를 총 동원해 해외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그 첫 결과물이 바로 중국 CITIC(중신)그룹과의 협력 합의다.
이번 합의는 이 부회장이 처음으로 금융 분야에서 구체적인 협력을 이끌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합의를 통해 양 기업은 삼성증권은 물론 자산운용 등 다양한 금융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삼성증권은 중신증권과 ▲리서치 정보공유 ▲고객ㆍPB간 교류 ▲상품 교차판매 ▲IB협력 등에 대해 업무제휴를 맺었다. 중국과 한국의 프리미엄 고객들을 공유하고, 각국의 좋은 상품들을 서로 팔 수 있게 돼 실적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자산운용 역시 ETF(Exchange Traded Fundㆍ지수연동형 펀드) 등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교차 판매 등을 예상할 수 있다. ETF는 KOSPI200, KOSPI50과 같이 특정지수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된 지수연동형 펀드(index fund)를 말하는데, 인덱스 펀드와 달리 거래소에 상장돼 일반 주식처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금융 분야 주요 인물들과 만남을 가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미국을 방문, 2~3곳의 미국 카드사 CEO들과 만나 삼성페이 활성화를 위한 협력 방안 등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 미국 방문 직전에는 한국을 방문한 세계 최대 전자결제 업체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과 회동하기도 했다.
최근 삼성전자가 루프레이를 인수, 갤럭시S6에 삼성페이를 탑재한 만큼 전자와 금융의 결합을 통해 삼성전자는 물론이고 삼성카드까지 사업을 키울 수 있도록 하려는 전략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해외 손해보험사 사장들과 만남을 갖기도 했다.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 중국, 일본의 손보사 사장들을 초청해 만찬을 주재한 것. 이 자리에는 일본 최대 손보사인 도쿄해상화재보험과 중국 국영 보험사인 중국인민재산보험공사(PICC) 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같은 만남이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현재 삼성화재는 중국 보험시장에서 외국 손해보험사 중 가장 많은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삼성생명 서울 지역 영업담당 사업부장(상무급) 등 10여명을 만나 현안을 챙기기도 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은 그룹 내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회사"라며 우량 설계사 등 핵심 인력 위주로 생명보험사업을 운용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삼성그룹은 사업재편 작업을 통해 비주력 사업은 과감히 쳐내고, 전자와 바이오, 금융 등 주력사업을 키우고 있다.
화학과 방산산업의 경우 아예 전체를 매각한 반면, 주력 산업에는 과감한 투자를 이어나가는 모습이다. 전자ㆍ바이오ㆍ금융은 이 부회장이 관심을 쏟는 분야이기도 하다. 특히 이 부회장은 전자-바이오, 전자-금융 등 신성장 사업들간의 융합도 모색하고 있어 앞으로 삼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를 꾀할 것으로 예측된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그룹사를 전체적으로 챙기는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인 가운데, 부실한 부분은 정리하고 성장성이 높은 산업을 중심으로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체질 변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전자산업 뿐 아니라 자산운용ㆍ보험 등 금융업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융사업 등 삼성의 계열사들을 모두 챙긴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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