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기초시굴 결과 막새기와·토기 등 수두룩
통일신라 마지막 단계 모습
내달부터 정밀발굴 시작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신라시대 정궁으로 추정되는 경주 '월성'에 대한 본격 정밀 발굴조사가 다음 달 시작된다. 지난해 12월 예비조사를 실시한 월성에서는 건물지와 토기, 기와 등 유물이 확인됐다. 월성은 왕궁 발굴의 최초 사례로서 10년에 걸쳐 예산 500억원이 투입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는 지난해 12월 12일부터 시작한 경주 월성 중앙지역 5만7000㎡에 대한 시굴조사 성과를 18일 발표했다. 시굴조사는 3개월 동안 월성 중심부 평지를 30cm 내외로 파 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매장구조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고자 실시된 예비조사 형식의 발굴에서 기단, 초석, 적심 등 건물지 여섯 동과 담장 열두 기 등이 확인됐다. 이 중 3호 건물지(28m×7.1m)는 정면 열두 칸, 측면 두 칸으로 적심 위에 초석을 올렸고 담장과 배수로가 딸려 있다. 유물은 굽다리접시(고배, 高杯), 병, 등잔, 벼루, 막새기와, 귀면기와, 용마루의 양 끝에 높게 부착하는 장식기와인 치미 등이 나왔다. 토기에는 '井(우물 정)', '口(입 구)'자 형태의 음각기호가, 기와 중에는 월성의 해자와 안압지에서 이미 발견된 적이 있는 '儀鳳四年 皆土(의봉4년(679년) 개토)', '習部(습부)', '漢(한)'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도 있다. 박윤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43)은 "의봉4년에 개보수가 있던 건물의 기와가 안압지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고, '습부'는 월성 내 지역명으로 추정된다"며 "삼국 시대에서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친 토기와 기와들이 출토된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연구소는 오는 20일 이번 예비발굴 성과를 문화재위원회에 보고한 뒤, 다음 달부터 본격적인 정밀발굴로 전환할 계획이다. 본격 조사를 앞두고 연구소와 위원회는 정밀발굴 방식을 전면 제토작업으로 할지, 부분 발굴을 진행할 지 조율한다. 박 연구관은 "시굴조사에서 건물지 부분적인 상황을 찾았고, 출토 유물의 명확한 형태 파악과 구역별 비교분석 등을 위해 일정 간격으로 둑을 남기고 전면제토하는 방식을 원한다"며 "레이더탐사를 하면 돌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평지 아래 깔려 있는 나무 기둥 흔적 등을 토대로 고상가옥의 존재 등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월성 발굴에는 최신 ICT(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기록화연구(사진학ㆍ영상공학ㆍ측량학), 성벽 축조공법 연구(토목공학), 절대연대 연구(물리학), 고대 지역생태환경연구(지리학ㆍ생물학), 고대 토지이용전략 연구(지형학ㆍ도시공학) 등 다양한 학제 간 융합연구가 병행된다.
월성은 경주시 인왕동에 있다. 신라시대와 관련한 기록에 등장하는 궁성 다섯 내지 여섯 곳 가운데 정궁으로 여겨지는 곳으로 초승달 모양이다. 사료에 따르면 파사왕 22년(서기 101년) 궁궐을 축조해 경순왕 9년(935년)까지 800여년간 왕궁으로 사용됐다. 특히 '삼국유사'에 신라의 국보인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보관돼 있었다고 기록돼 있을 만큼 중요하게 여겨진 곳이다. 월성은 사적 제16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며 총 면적은 20만7528㎡다.
문화재청은 "경주 월성 조사에는 천년 고도 경주의 역사정체성을 규명하고, 대통령 공약사항인 '경주 왕궁 복원'의 이행을 뒷받침한다는 뜻이 있다. 지난 1914년 일제가 월성 남벽 부근을 처음 파헤친 지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실시한 최초의 내부조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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