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레저 르네상스' 외치는 한국이 들여다봐야 할, 이웃나라의 항만경제학
한때 쓰레기·폐선 들어찬 항만, 이젠 1000여척 요트 줄지어 年 15억엔 매출
레저·관광·산업 복합시킨 성공 마리나 모델…"新 산업 창출사례 벤치마킹"
[요코하마(일본)=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시작은 버려진 배였다. 목재를 활발히 실어 나르던 항만은 언제부턴가 텅텅 비고, 쓰레기 더미가 그 공간을 대신 채워나갔다. 폐허가 된 화물항에 버려진 배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 끝에 나온 해법이 바로 '마리나'였다.
'해양레저의 꽃'으로 불리는 마리나항만, 그 중에서도 일본 거점 마리나항만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요코하마 베이사이드 마리나'는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 5일 방문한 베이사이드 마리나에는 1000여척의 요트, 보트가 줄지어 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호즈미 나카타 ㈜베이사이드 마리나 대표는 "시민들에게 요트 등 해양레저의 즐거움을 주면서 쇼핑 등에 대한 욕구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라고 활짝 웃었다.
1996년 4월 문을 연 베이사이드 마리나는 회사 설립(1993년) 후 3년 만에 정부와 지자체 대출을 모두 갚고 현재 연매출 14억~15억엔, 영업이익 1억5000만~2억엔을 기록하는 '알짜'로 성장했다.
특이 사항은 마리나를 단지 요트, 보트 등 레저선박을 정박하는 일종의 주차장 역할로만 국한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1496개의 도크, 11개의 급유기, 30척의 동시 수리가 가능한 공간 외에도 직접 요트를 꾸밀 수 있는 DIY샵, 유럽 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스트리트형 쇼핑몰 등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말 그대로 레저문화와 산업, 관광을 복합시킨 '창조경제'인 셈이다.
나카타 대표는 "마리나 자체만으로 사업을 운영하면 한계에 부딪힐 수 있고, 고객들을 많이 유치하기 위한 상업시설 등의 계획이 필요하다"며 "다른 마리나보다 계류(繫留)비가 싸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작은 급을 기준으로 한 계류비는 연간 30만엔이다.
베이사이드 마리나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계류비를 책정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비어있는 화물항 설비를 활용해 초기 투자비를 줄였기 때문이다. 정부와 요코하마시의 무이자 대출 지원도 빠른 경영안정에 보탬이 됐다. 설립 당시 투자금 120억엔 가운데 40억엔이 대출금이다.
특히 항만재개발지구인 '미나토미라이21'에 자리를 잡아 큰 틀에서 마리나의 비전을 수립할 수 있었던 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나카타 대표는 "2단계 개발계획으로 호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연말까지 사업이 완료되면 숙박시설도 정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21세기 동북아 마리나 허브 실현'이라는 비전하에 마리나산업 육성에 나선 한국정부와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대목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마리나정책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실패사례로 오히려 손꼽힌다"면서도 "요코하마 베이사이드 마리나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분명 성공한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입지조건과 육해상환경, 인근 도심, 사용자 등을 고려해 성격과 개발목적을 정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는 예라는 설명이다.
한때 영화 속 부자들만 누리는 호화 여가로 여겨졌던 요트는 국민소득이 올라가면서 새롭게 각광받는 추세다. 세계해양산업협회(ICOMMIA)에 따르면 2012년을 기준으로 세계 레저선박 수는 2840만척, 시장규모는 445억달러에 달한다. 한국의 경우 2011년 5818대에 불과했던 레저선박 등록 누적대수가 2014년 1만2985대로 3년만에 두배이상 급증했다. 아직 일본에 비해 20분의 1수준이지만, 가히 폭발적인 증가세다.
문제는 현재 국내에 운영 중인 마리나 32개 가운데 '허브'역할을 하는 거점 마리나는 커녕, 급유ㆍ수리 등 관련산업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조차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들 마리나에서 계류 중인 선박은 총 1750척에 불과하다. 국내 마리나 1곳 당 300척을 수용해야 수익이 나는 구조임을 감안할 때 아쉬운 대목이다. 요트제작사인 흥진티앤디의 정회인 요트사업부 상무는 "고가의 요트를 안전하게 믿고 정박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계류시설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울진 후포, 창원 명동, 여수 엑스포, 인천 덕적도 등 6곳을 거점 마리나 항만으로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최근 제주도 신양리에도 복합레저타운이 결합된 거점마리나를 만들겠다며 CKIPMㆍIPM 등 세계적 마리나 기업들이 뛰어들었다. 정부는 기존 마리나 외 300척 이상 규모를 갖춘 거점 마리나를 추후 40개까지 확대해나간다는 방침이다. 비어있는 어항을 이용해 정거장 형태의 소규모 마리나역을 만드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홍장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양산업관광연구실장은 "일본의 경우 중규모 이상의 마리나 149개를 '바다의 역'이라는 브랜드로 운영하며 식사ㆍ온천 등 다양한 레저 프로그램과 연계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아직 하드웨어만 생각하는 수준이지만, '바다의 역'과 같이 소프트웨어를 얹는 방식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요코하마(일본)=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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