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형벌을 통해 타율적으로 강제될 수 없다."
26일 오후 2시23분 헌법재판소는 '간통죄' 위헌결정을 내렸다. 1953년 형법 제241조에 신설된 이후 62년간 지속됐던 간통죄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잡지의 단골 메뉴는 유명인들의 간통 논란이었다.
1960년대 톱스타 배우인 최무룡, 김지미씨 간통사건이 대표적인 경우다. 1970년대도 최고스타였던 배우 정윤희씨가 간통스캔들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1980년대에는 현역 국회의원이 검사 아내와 간통행위를 하다 의원배지를 내놓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간통이 형법으로는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됐다.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이 간통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간통죄 폐지가 너무 늦었다는 시선도 있다. 간통죄는 벌금형도 없이 2년 이하의 징역이 선고되는 범죄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실형을 받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실형은커녕 구속 기소되는 경우도 찾기 어려워졌다.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라는 얘기다.
프랑스는 간통죄를 224년 전에 폐지했다. 세계적으로도 대만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간통죄는 존재하지 않거나 사문화된 상태로 존재한다. 한국도 간통죄 폐지 주장이 끊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62년간 지속됐다. 간통죄를 가족공동체 유지의 버팀목으로 인식하는 시선 때문이다.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자유만을 앞세워 수많은 가족공동체가 파괴되고 가정 내 약자와 어린 자녀들의 인권과 복리가 침해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정미 재판관과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는 안창호 재판관은 이번에 '간통죄 합헌' 의견을 냈다. 사회의 '성 도덕'이 붕괴될 것이란 막연한 공포는 경계해야 하겠지만, 폐해를 걱정하는 시선은 경청할 대목이 있다. 비록 소수의견에 그쳤지만, 간통죄 폐지 이후 대안을 모색할 때 고려돼야 할 부분이다.
간통죄는 62년간 지속됐지만 퇴장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26일 오후 2시7분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간통죄 관련 판단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한지 16분만인 2시23분 '위헌'이 선고되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16분은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헌재의 존재의의를 되새긴 소중한 시간이었다. 헌재는 국가공권력이 헌법을 준수하고 있는지 판단하고 국민 기본권을 보호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현실의 평가는 달랐다. 민감한 정치현안을 판단하면서 '권력 눈치보기' 의심을 받기도 했다. 헌재의 판단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선이 늘어나면서 위상은 흔들렸다.
헌법재판관들이 간통죄 결정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위상변화를 이끄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구도가 아니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재판관들은 간통죄 판단이유 설명부터 결정까지 16분간 탄탄한 논리적 근거와 법리적 판단을 바탕으로 견해를 피력했다. '간통제 위헌' 찬성의견, 반대의견, 보충의견까지 어느 것 하나 흘려들을 내용이 아니었다.
국민이 바라는 헌재도 그런 모습이 아닐까. 헌재가 기본으로 돌아가면 위상강화는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재판관들이 수십 년 법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논리력을 바탕으로 치열한 법리논쟁을 벌이고 합리적인 결과를 내놓는다면 헌재 판단에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이들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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