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에 사디즘적인 요소 결합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엄마들의 포르노'라고 불리며 개봉 전부터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26일 개봉)'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순진한 여대생과 젊고 매혹적인 백만장자의 로맨스를 다룬 이 작품의 관건은 원작의 대담한 설정을 얼마나 영상으로 화끈하고도 설득력있게 구현해냈느냐에 달려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엉성하고 설긴 스토리는 파격적인 영상에도 불구하고 지루함마저 안겨다준다. 주인공들의 노출 장면 역시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에로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야기는 현대판 신데렐라의 얼개를 따라간다. 순진하고 평범한 대학생 '아나스타샤'가 27세 나이에 억만장자가 된 '크리스찬 그레이'를 만나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시작된다. 젊고 잘생기고 매력적인 '그레이'는 고급차와 최신형 노트북을 선물하고, 비싼 와인을 따라주며, 개인 헬기를 태워주는 등 돈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며 '아나스타샤'의 마음을 홀린다. 여기까지는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가난한 집 딸-부잣집 아들의 스토리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레이'가 '아나스타샤'에게 자신의 사디즘적인 취향이 적힌 계약서에 싸인을 요구하기 전까진 말이다.
"섹스는 하지만 사랑은 하지 않는다." 두 얼굴의 사나이 '그레이'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의 취향은 더욱 난감하다. 수갑, 채찍, 가죽끈, 형틀로 가득 찬 자신만의 은밀한 '레드룸'을 보여주면서 '그레이'는 "룰을 따르면 상을 줄 것이고, 이를 어기면 벌을 내릴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지금까지 여자를 만나왔던 방식이다. 여자들 역시 자신의 계약을 따르면 쾌락의 절정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토머스 하디의 '테스'를 감명깊게 읽었던 아나스탸샤는 갈등하지만, '도미넌트(주인)'와 '서브미시브(하인)'의 관계를 원하는 이 남자에게 끌리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
영화는 두 배우(다코타 존슨, 제이미 도넌)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클로즈업해가며 캐릭터들의 매력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제이미 도넌의 연기는 넘치는 매력의 '그레이'를 표현하는 데 역부족이고, 무엇보다 이 둘이 함께 있는 그림에서 별다른 긴장감과 화학작용을 느낄 수 없다. 때때로 지나치게 과한 대사는 실소마저 불러일으킨다. 소설은 '아나스타샤'의 내면의 변화를 세심하게 따라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마저도 생략해 설득력을 잃는다.
작품 속 노출과 성행위 장면은 원작에 비해 상당 부분 순화됐다. 여기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원작 이상의 영상을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심심하다' 혹은 '시시하다'고 할 지도. 하지만 원작을 모르는 관객들은 불친절한 스토리에 덧붙여진 변태적 가학 행위에 불쾌감을 느낄 지도 모른다. 영화는 총 3부 6권으로 이뤄진 원작의 1부에 해당한다.
영화의 완성도와 관계없이 작품에 대한 관심은 유례없이 뜨겁다. 소설이 전세계에서 1억부 이상 판매됐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린 만큼, 제작 단계부터 이슈를 몰고 다녔다. 북미에서는 개봉 3일 만에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스코어를 뛰어넘으며 약 8167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이 같은 여세를 몰아 속편 제작까지 확정됐다. 국내에서도 25일 전야개봉에서 역대 청소년관람불과 외화 가운데 '색, 계'를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