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동성 회수·국제 신평사들, 채권 등급 줄줄이 하향·'개미투자자' 손실 위험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고금리로 최고의 투자처로 꼽혔던 신흥국 통화 표시 채권이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영국 경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금융위기 이후 급속도로 팽창한 신흥국 회사채 시장의 버블 붕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최근 분석했다.
◆덩치 커진 신흥국 회사채 시장= 프랑스은행 BNP파리바에 따르면 20년 전 1070억달러(117조7428억원)에 불과했던 신흥국 통화 표시 채권 시장 규모는 지난해 2조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미국의 고수익 회사채 시장보다 크며 유럽 정크본드 시장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머징 채권 시장의 투자 매력도가 높아진 데에는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국의 고성장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이 풀어놓은 수조달러의 유동성과 전 세계 투자자들의 고수익 추구 심리 등도 신흥국 회사채 시장의 덩치를 키운 요인이다.
지난 2000년 6%대였던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2%대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미국 주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은 여전히 8%대의 목표 수익률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내고 싶어 하는 큰손 투자자들이 왕성하게 신흥국 채권을 사들였다. 금리가 높은 만큼 리스크를 고려해야한다는 경고도 나왔지만 투자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신흥국들도 즐겼다. 중국이 지난 2004년 해외에서 발행한 위안화 표시 채권은 36억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1171억달러로 급증했다. 같은기간 브라질의 채권 발행 규모는 10배 넘게 늘어난 299억달러를 기록했다. 멕시코와 인도는 각각 4.6배, 3.4배 증가한 168억달러, 155억달러다.
◆커지는 거품, 확산되는 우려= 신흥국 채권 시장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제 신흥국으로 몰려들었던 세계 투자자들은 앞 다퉈 신흥국에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미국은 양적완화 종료 이후 그동안 풀어놓은 수조달러 대의 유동성을 거둬들일 태세다. 이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금융위기 이후 첫 금리인상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금리 인상 기대에 따른 달러 강세 속에 신흥국 외환시장의 변동성은 높아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의 지난해 경제 성장률은 7.4%로 199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왕성한 식욕을 보이던 중국의 원자재 수요 역시 예전만 못하다.
문제의 징조는 이미 포착된다.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사 3곳이 지난해 4분기에 신용등급을 낮춘 신흥 통화 표시 채권의 수는 등급이 높아진 채권보다 111개나 더 많았다. 이는 지난해 3분기 26개에서 급증한 것이다. 이같은 흐름은 올해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한달 동안에만 56개의 신흥 통화 채권의 등급이 강등됐다.
BNP파리바의 데이비드 스페겔 신흥국 채권 전략 대표는 "역사적으로 신흥국에 대한 투자 흐름은 이머징 국가들의 신용 주기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면서 "채권 등급이 내려가면 부도율이 높아지고 이는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잇단 악재, 보이지 않는 출구에 '개미 투자자' 위기= 최근의 저유가 기조 역시 신흥국 채권 시장에는 악재다. 이머징 통화 표시 채권의 30%는 에너지 분야에서 발행됐다. FT는 유가가 배럴당 10달러씩 내려갈 때마다 신흥국 채권의 투자 수익은 매년 250억달러씩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머징 채권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 투자자들은 연기금, 헤지펀드 등 기관 투자자들에 비해 리스크 대비가 부족한 데다 장기적인 투자 안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기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져 고스란히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채권시장의 매도세가 주식 등 신흥국 자산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노무라 증권의 스튜어트 오클레이 신흥국 외환 거래 책임자는 "신흥국 자산에 대한 매도가 시작되면 시작되면 매우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자금을 조달해야하는 기업과 국가의 발행을 구조적으로 막히게 된다"고 말했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