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여당 지도부와 회동했다. 이날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 국회 인준을 당부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 후보자의 총리 취임과 이어지는 개각, 청와대 개편을 조속히 마무리 짓고 경제활성화에 매진하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구상이다.
당청관계로 시야를 돌리면, 비박계 여당 지도부가 청와대를 압박하면서 주도권이 당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가 연출된 데 대한 박 대통령의 반격 행보로 볼 수 있다. 전날 박대통령은 증세와 복지축소를 요구해온 정치권을 향해 "국민에 배신"이란 강한 표현을 써가며 역공을 펼쳤다. 여당과 청와대 간 주도권 줄다리기가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김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원유철 정책위의장 등 신임 여당 지도부와 '상견례' 형식으로 만나 이 후보자 국회 인준 문제, 증세 등 복지정책 이슈,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 등 현안을 두루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선 현정택 정책조정수석, 안종범 경제수석, 조윤선 정무수석이 배석했다. 여당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당정청이 새롭게 잘 호흡을 맞추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한 번 제대로 잘 맞춰서 삼위일체가 돼서 함께 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그저께 야당 대표도 선출이 됐고, 2월 임시국회도 이제 시작이 된 만큼 무엇보다도 경제활성화가 잘 되도록 국회에도 잘 이끌어주고, 여러 가지로 직면한 문제가 많으니까 그것도 잘 좀 해결이 돼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여러 현안에서 당청이 엇박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감안한 언급으로 들린다.
이에 김무성 대표는 "어제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에 경제활성화가 최우선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며 "야당이 하도 협조가 안 돼 가지고…문재인 대표와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경제활성화 법 통과 협조해 달라는 이야기도…잘 풀어가도록 하겠다"고 답하면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날 회동의 핵심은 이 후보자 인준 문제였다. 현 정부 첫 정치인 총리 카드는 수월한 검증통과라는 애초 기대와 달리, 인준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언론 검증단계에서 치명적 결함이 다수 발견된 탓이다. '이완구 카드'가 표류할 경우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구상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출범부터 청와대가 '각'을 세워온 여당 지도부를 다독여, 12일 있을 총리 후보자 인준 투표에서 일탈 표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회동을 마련한 박 대통령의 의중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증세ㆍ복지축소 문제에 있어선 박 대통령의 확고한 원칙을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9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활성화 노력 없는 증세를 국민에게 할 소리냐"며 여당을 포함한 정치권을 공격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미 청와대와 맞서는 모양새를 피하며 한 발 물러선 상태다. 김 대표는 9일 외신기자클럽 초청 회견에서 "대통령의 복지공약은 새누리당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최후의 수단으로 증세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증세ㆍ복지축소 없이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는 박 대통령의 생각에 정면으로 맞설 생각이 없다는 뜻을 전한 셈이다.
지지율 급락이란 불리한 입장에서도 박 대통령이 당을 향해 강공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집권 3년 차 초반부터 '레임덕' 이야기가 나오는 등 현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서 밀리면 향후 3년의 임기 동안 국정운영의 동력이 심각히 훼손될 것이란 우려다.
지난달 신년기자회견 후 소통강화 등 '부드러운 리더십'을 강조해온 행보에도 다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애초 본관에서 열리던 수석비서관회의를 참모들 업무공간인 '위민관'으로 이동해 개최했는데, 9일 회의는 다시 본관으로 복귀했다. 회의 전 10여분간의 '티타임'도 생략했다. 증세불가를 언급할 때는 목소리가 격앙되기까지 했다. 여야가 유사한 목소리를 내며 갈 길 바쁜 청와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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