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고층 설계, 미국·유럽·일본 설계사가 독점
핵심 설계분야 엔지니어링 기술력 확보해야
[아시아경제 윤나영 기자] 2016년 완공을 목표로 잠실에 세워지고 있는 123층 높이의 롯데 월드타워(555m)와 2019년 부산에 들어설 예정인 롯데타운의 초고층 건물 '롯데타워'(107층ㆍ510m)의 설계를 주도하고 있는 회사는 미국의 SOM이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층빌딩인 송도 동북아트레이드타워(68층ㆍ312m)의 설계는 케이피에프(KPFㆍ미국)가 도맡았다. 서울 타워팰리스(G동)와 63빌딩, 부산 해운대 아이파크 등도 모두 외국 설계사의 작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31조원 규모로 진행됐다 무산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주요 설계를 미국과 유럽, 일본 건축설계회사 19곳이 독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에서 초고층으로 분류되는 높이 200m 이상, 50층 이상 건축물의 핵심설계 대부분은 해외 업체가 독식하고 있다. 초고층 건축기술을 구현하는 시공기술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기술의 꽃이자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설계분야는 외국기업들에 고스란히 내주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건축설계가 외면받는 것은 기술력의 차이 때문이다. 초고층 설계는 저층과 달리 고려해야 할 요소가 부지기수로 많다. 육중한 장비를 동원해 수많은 자재를 첨단 IT기술이 적용된 설비와 함께 일체화하면서, 동시에 안정된 건축구조와 편리한 실내공간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고도의 노하우가 쌓여야만 구현이 가능하다. 더구나 지진에 대비해야 하고, 바람의 영향을 고려해야 하며, 화재 등의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이자 초고층빌딩설계기술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정란 단장은 "초고층 건축 설계는 그야말로 엔지니어링 설계의 총체"라고 요약했다. 엔지니어링이란 기획과 타당성조사부터 설계, 분석, 감리, 평가, 자문 등의 활동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초고층 엔지니어링 기술 수준은 실제 어느 정도일까.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박재범 건축사협회 정책연구실 조사연구팀장은 "우리나라의 초고층 설계기술 수준 자체보다는 설계 이후 과정의 엔지니어링 능력이 미국ㆍ독일ㆍ일본 등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면서 "엔지니어링 기술 관련 특허나 경험 등이 15년에서 많게는 20년 정도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김상대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과 교수(세계초고층학회장)는 "특히 대피와 관련된 안전설계, 화재 진압, 디자인 등에서는 미국이 보유한 기술의 70~80% 정도밖에 안 된다"며 "이런 이유로 한국 업체에는 참여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경험이 없다보니 기술력이 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국 건축설계사와 협업을 하더라도 끌려가는 입장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관련 업계의 지적이다. 국내의 한 건축설계사 관계자는 "외국 건축가가 건물 콘셉트와 기본을 설계해 방향을 잡아주면 한국 업체가 참여하는 식"이라며 "우리 역할도 중요하지만 대부분 '로컬 파트너'란 이름으로 한쪽 발만 담그는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이에 정부는 설계능력 제고를 위한 방안을 자주 마련하고 있고 예산도 투입 중이다. 지난 2013년 8월에는 건축설계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건축설계분야 육성책에 대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법이 걸림돌이어서다. 건축법은 '모든 건축 설계와 감리는 건축사만이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로인해 엔지니어링에 필수적인 시공사 등의 기술자는 배제된다는 것이다. 정란 단장은 "초고층 건축은 디자인, 기술, 고속 시공 등이 어우러진 첨단 기술의 총체이기 때문에 설계부터 시공과정까지 전문분야 기술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엔지니어링 기술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관련 전문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윤나영 기자 dailybes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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