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피소드 따라가기 급급...'바다' 가창력 돋보여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무대가 열리고 이윽고 우리에겐 TV '주말의 명화' 시그널로 익숙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영화 속 '비비안 리'가 살던 타라 농장이 무대 위에 펼쳐지고 철없는 부잣집 아가씨 '스칼렛 오하라(바다)'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다.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칼렛은 자신이 사랑하는 애슐리가 멜라니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는다. 그 후 스칼렛과 레트 버틀러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이어지고 곧이어 남북전쟁이 터지면서 이들의 운명도 뒤얽힌다.
지난 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한 프랑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일찌감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2003년 프랑스에서 첫선을 보인 후 이번이 아시아 초연인데다가, 이미 소설과 영화로 많은 인기를 누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다, 서현(소녀시대), 임태경, 주진모, 마이클 리 등의 화려한 캐스팅과 50억원에 가까운 제작비도 기대감을 높이는 데 한 몫 했다.
하지만 미국의 남북전쟁과 노예제도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 네 남녀의 운명과 사랑을 담은 이 방대한 소설을 160분짜리 무대로 효과적으로 옮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철부지 숙녀에서 점차 강인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변모해가는 스칼렛 오하라의 캐릭터를 정교하게 쌓아나가기보다는 큰 에피소드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뮤지컬에서의 스칼렛은 오히려 상황에 쉽게 휩쓸려다니는 들쭉날쭉한 인물로 묘사된다. 저 유명한 '나에게는 타라가 있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는 대사에서 관객들이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하는 이유다.
핍박받는 노예 흑인들이 울분과 한을 토해내는 집단 군무 장면에서의 연출은 역동적이면서도 감각적이지만 작품의 전반적인 톤과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1000페이지가 넘는 원작의 스토리를 따라가기에도 바쁜 마당에 버틀러가 즐겨 가는 술집에서의 화려한 쇼 등 의미 없이 펼쳐지는 장면들도 종종 몰입을 방해한다. 영화에서 유명했던 장면들의 하이라이트만 모아놓아서 원작을 모르거나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들은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은 바다의 가창력은 훌륭하다. 첫 뮤지컬 도전에 나선 버틀러 역의 주진모는 연기는 안정적이나 노래에서는 가사 전달이 제대로 안 돼 아쉬움을 남겼다. 실제 오케스트라의 연주 대신 녹음 음악(MR)을 사용해서 음향이 조화롭지 못한 장면도 종종 있다. 공연은 다음 달 1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계속된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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