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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주니어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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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주니어 콤플렉스 이정일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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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그 아버지, 머 하시노?" "OO그룹 회장이십니다." "장난치나. X가리 박아."


한때 재계 순위 30위권에 속했던 중견기업 2세가 농담처럼 들려준 군대 시절 경험담이다. 졸병의 수난사랄까. 고참의 질문에 너무 솔직하게 답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장 난 치 나' 4음절에 독기가 서렸다. 얼차려는 살벌했고 군생활은 꼬였다. 국방부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고참이 손을 내밀었다. 후임이 건방지게 농담하는 것으로 오해했다면서, 기업 회장 아들이 군대에 올 리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렇게 군생활은 풀렸지만 2세 꼬리표는 그룹에서 근무하는 지금 더욱 따갑다. 수수하고 인간적이며 탈권위적이지만, 일 잘하고 매너가 좋아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만 일부의 시선은 삐딱하다. 낙하산. 게다가 그룹은 과거 명성을 잃었다. '차포' 떼어주고 껍데기만 남았다. 부친이 세운 회사를 되살려야 하는 숙명까지 낙하산의 어깨는 무겁다.


생활가전 쪽에서 제법 알려진 또 다른 기업 얘기다. 글로벌 브랜드와 맞서는 토종 명가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창업주의 남다른 근성이 부각됐다. 어느덧 2세가 곁을 지킨다. MBA 출신에 경력이 화려하지만 가업승계를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2세는 '아버지'가 아닌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입에 달고 산다. 어려서부터 부친에 대해 살가운 기억은 없다. 엄한 성격에 늘 바쁜 모습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얼굴에서 부친을 본다. 일중독. 새벽 일찍 출근해 밤늦게 퇴근, 집에서도 회장님과 서류를 검토한다. 월급날이 가까워지면 은행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거래처에 고개를 숙이는 일도 익숙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부친 앞에서는 위축된다. 기업가로서 넘어설 수 없는 벽이다.

창업주 주니어(jr)들은 콤플렉스 덩어리다. 낙하산이라는 편견은 높고 두텁다. 실력으로 입증해야 한다. 성품은 덤이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소양까지. 궁극적으로 부친의 그늘을 벗어나야 한다.


가업 승계가 쉬울 리 없다. 현실 도피가 다반사다. 중소ㆍ중견 업계는 우려한다. 골치 아픈 기업 경영이 싫다고 손사래를 치는 자녀들이 즐비하다고. 그들을 억지로 끌어다 사무실에 앉혀놔봤자 한 달도 못 버티고 달아난다. 다시 뒷덜미를 끌고 오지만 한번 떠난 마음이 돌아올 리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代)가 끊기는 기업들이 수두룩해진다. 어려운 환경에서 가업승계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주니어는 극소수다. 그마저도 중간에 쓰러지고 도태되고, 과연 몇이나 살아남을까.


같은 질문을 대기업에 던진다. 3ㆍ4세 주니어들의 도전이 한창이다. 삼성, 현대차, 두산, 한화, 신세계, LG, CJ…. 세대교체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후하지 않다. 검증되지 않은 경영능력, 무기력한 책임감에 비해 과도한 권력, 그 권력을 쥐기 위한 혈족간 불협화음 등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때마침 '땅콩 리턴' 사태까지 불거졌다. 특권에 취한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그들에게 가업승계는 '숙명'이 아니라 '로또'다. 인생의 '배수진'이 아니라 '탈출구'다. '금수저는 영원하다'고 착각한다.


가업승계 자체가 병폐는 아니다. 세계 유수의 명문기업 유전자(DNA)는 가족이자 혈족이다. 가족의 책임감이자 가문의 명예다. 삼성그룹이 벤치마킹하는 스웨덴 최대 재벌 발렌베리의 가훈은 '존재하지도 드러나지도 않는다'이다. 자녀들에게 특권보다는 의무를 강조한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 가문의 좌우명은 '남이 나를 대접하기를 원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다. 300년이 넘는 독일 머크는 가문의 후광 없는 개인의 실력을 오롯이 요구한다.


주니어 콤플렉스를 극복하라는 한결같은 주문이다. 콤플렉스에 당당히 맞서 이겨내고, 가업승계를 숙명처럼 무겁게 받아들이고, 마침내 부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주니어는 진정한 기업가로 성장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누구일까. 과연 우리에게 기업가 정신이 있기는 한가. 쉽게 답을 찾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이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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