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유럽우주국은 혜성 위에 탐사선을 착륙시키는 대사건을 성공시켰다. 로제타호의 탐사로봇 필레는 지구에서 5억1000만㎞ 떨어진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혜성, 그것도 초속 18㎞라는 엄청난 속도로 날고 있는 곳에 착륙한다. 총알의 속도가 초속 1㎞이니 총알의 18배 속도가 어느 정도의 스피드인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유럽우주국의 맷 테일러 박사는 '날아가는 총알을 맞히겠다며 눈을 가린 채 말을 타고 질주하면서 총알을 쏘는 격'이라고 이번 프로젝트의 난이도를 표현하지만 혜성이 총알의 18배 속도이니 이조차도 적절한 비유는 아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덤비는 자체가 어처구니 없기도 하다. 우선 비용이다. 유럽우주국은 이번 로제타 프로젝트에 13억유로(1조8000억원)를 투자했다. 다음으로 수행기간이다. 로제타호는 2004년 3월 아리안 로켓에 실려 발사된 뒤 10년5개월간 64억㎞를 비행해 지난 8월 목성을 도는 67P 혜성의 궤도에 진입했다. 10년 전인 2004년이라면 한국이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유럽우주국은 10년에 걸쳐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황당무계한(?) 프로젝트에 어떻게 10년 동안 예산이 책정되었는지 신기할 정도다.
또 하나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올해도 일본은 노벨상을 수상했다. 아카사키 이사무, 아마노 히로시, 나카무라 슈지 등 3명의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 중 메이조대학의 아카사키 이사무 교수는 올해 85세다. 그는 교토대를 졸업한 뒤 마쓰시타(현 파나소닉) 전기연구소 연구원, 나고야대 교수를 거쳐 메이조대 종신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마쓰시타 연구소 시절인 1973년부터 청색 발광다이오드(LED) 개발을 시작했으니 40년 만에 성과를 인정받은 셈이다. 그나마 살아 생전에 노벨상을 받았으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아카사키 교수는 수상자 발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구를 시작할 때 20세기 중에는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연구를 그만두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조금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로제타 프로젝트처럼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길고 긴 장기프로젝트라는 점, 둘째는 처음 들을 땐 말도 안 되는 연구를 수행하는 '오타쿠'를 용인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포인트는 정확히 한국의 현실과 반대된다.
한국은 연구의 평가 척도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 단기 업적에 대한 집착과 오타쿠의 부정이다. 대학 교수나 연구기관의 연구원들은 한 해, 한 해 업적평가를 받으며 그 평가의 기준은 이공계라면 SCI, 문과계열 교수라면 SSCI라는 미국 민간회사의 저널 리스트에 나열된 논문집에 논문이 실리느냐에 달려 있다. 국내 학회지도 한국연구재단이 관리하는 등재지와 등재후보지라는 논문집 리스트에 따라 평가받는다. 국가가 학자들의 논문을 평가해 점수를 주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도쿄대에 계시는 지도교수께 이런 한국식 논문 평가 시스템을 설명해 드리자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해마다 논문으로 평가받는 교수나 연구원들은 절대 장기연구나 오타쿠 연구를 하지 않는다. 해마다 정해진 분량의 논문을 써야 하고, 논문의 내용이 아닌 논문의 양으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해마다 꼭 이맘때쯤 노벨상 수상이 보도되면, 그리고 일본이 수상이라도 하면 매번 똑 같은 교훈과 반성이 한국 사회를 뒤덮는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의 시스템인 '도토리 키재기식 논문 생산 방식'으로 돌아간다.
아카사키 교수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유행하는 연구에 매달리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좀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한국에 대입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는 유행하는 연구에 매달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빨리 그만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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