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연구원, 한국경제 4대 위기론 실체 지표로 점검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한국경제 상황이 고장난 자동차와 같다. 엔진이 덜덜거리는데 도로에서 차가 멈춰서면 손쓸 방도가 없다. 지금 당장 수리를 맡기던가 새 차로 갈아타야 한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 경제를 '고장난 자동차'에 비유하며 이 같이 말했다.
권 원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잠재성장률 하락의 장기·고착화 징후 ▲커지는 중국 리스크 징후 ▲엔저와 일본기업의 역습, 중국과의 기술격차 축소 ▲세계 최하위권의 노사협력 등 4가지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먼저 권 원장은 지속적인 잠재성장률 하락은 한국경제가 성장을 멈추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지난 1980년대 이후 잠재성장률은 10%대에서 1%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이고 여기에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2분기와 3분기를 제외하고 2011년부터 12분기 가량 전분기 대비 0% 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은 더 암울하다. OECD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가 가장 빠른 편이며, 2038년에는 잠재성장률이 0% 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 저하에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심각한 문제로 권 원장은 인적자원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들었다. 투입요소별 잠재성장 기여도를 보면, 노동투입의 기여도(10년 단위로 측정)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이마저 2011년 이후부터는 마이너스로 돌아설 전망이다. 우리나라 전체 실업률 대비 청년실업률 비율도 지난해 2.58배로 OECD 평균 2.3배보다 높다. 특히 구직포기청년실업자인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 청년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로 OECD 33개국 중 5위다.
권 원장은 또 중국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징후를 지적했다. 그 동안 중국은 성장 목표치를 실제 성장률보다 낮게 잡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정부의 미니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성장률이 2분기 7.5%에서 3분기 7.3%로 하락하면서 올해는 성장목표에 미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첫 번째 우려는 중국정부의 경기부양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보다 큰 우려는 사회주의 정부가 시장경제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권 원장은 이 같은 시스템 리스크를 중국경제의 경착륙이 우려되는 징후로 분석하면서 "조만간 현실화 될지 모르는 중국경제 위험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경기침체 등 유럽경기도 심상치 않다. 유럽의 저성장 기조 역시 고착화되고 있는데다가 유럽발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아울러 권 원장은 상대적으로 부가가치 있는 산업은 엔저(7일 현재, 100엔당 948.34원)를 등에 업은 일본기업에 당하고, 노동집약적 산업은 중국에 밀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일본, 유로권의 경제 상황과 서로 상반된 통화정책 기조를 감안할 때 엔저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권 원장은 우리와 경합하는 수출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회복한 일본기업의 역습을 우려했다. 산업경쟁력에 있어 최근 중국기업의 추격이 화두가 된 상황이다. 일본과의 기술격차는 여전히 10%p 이상 벌어져 있고, 중국과는 4년전 17.8%p 차이에서 12.5%p로 격차가 좁혀진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권 원장은 국가경쟁력보고서의 노사협력 세계 순위가 2008년 95위에서 2009년에 131위로 떨어진 후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는 점을 우려했다. 국가 경쟁력 순위를 떨어트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는 최근 우리 산업의 위기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큰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았다.
이와 관련해 권 원장은 노사관계를 가늠할 척도 중 하나인 노사협상 기간만 단축해도 영업이익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경연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사협상기간이 4일 단축되면 해당 기업의 매출영업이익률이 2%에서 최대 4%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체교섭 교섭 빈도수만 두고 일본과 비교해보면, 일본은 전체 사업장 기준 약 49.6%가 1회에서 4회 정도 교섭을 진행하는데 반해, 한국은 70.5%가 10회 이상 진행된다. 이에 대해 권 원장은 임금·단체협약 유효기간이 1년인 관계로 임단협에 드는 기회비용도 매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제조업을 영위하는 A사의 2011년 기준 영업이익은 4조 6844억 원으로 노사협상기간이 4일 줄어들 경우,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3.2% 증가하고 금액으로 환산 시 약 1499억 원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낫따. 이는 자동차 회사의 중형차 약 7495대를 추가 생산할 수 있는 금액으로 추정된다.
그는 또 사법부의 입법화 현상을 경계했다. 지난해 대법원 통상임금 판례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는 데에 대한 비판이다. 국회도 문제다. 지난해 4월 정년연장법안(정년 60세 의무화)이 통과됐지만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변경에 대한 법규가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 단체 등은 대화에 응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권 원장은 "여전히 예측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인력수급, 비용추정 등 내년도 경영전략을 제대로 짤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책을 다루고 해석하는 주체들이 경제현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현 경제를 위기상황으로 진단한 권태신 원장은 수도권 규제, 대기업 규제, 과도한 환경규제 등 기업의 발목을 잡는 핵심규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규제개혁과 성장전략'을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은 벤치마킹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제조업 위기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정부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산업경쟁력강화법(일명 '원샷법')'의 한시적 도입도 제안했다. 샌드위치 신세가 된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주장이다. 그는 2000년대에 일본도 산업재생법을 통해 수많은 사업재편이 일어나고 제조업이 활력을 찾았다고 부연했다.
산업경쟁력강화법은 일본이 1999년 도입한 산업재생법과 유사한 것으로 부실 계열사를 정리하고 사업 재편 시 취·등록세 등 면제, M&A 시 공정위 심사기간 현재 1개월에서 절반으로 단축, 지주회사 내 공동투자 허용, 부채비율(현행 200%) 완화 등으로 구성된다.
내년도 8.3조원 규모의 창조경제 예산안(2013년 예산은 7.1조원)를 두고 여야가 대립하는 가운데, 권 원장은 이를 정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경계했다. 창조경제의 구체성 논란은 있지만 새로운 사업영역 개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새로운 벤처들이 계속 나와서 혁신적인 시도를 하는 데에 자본이 원활히 유입돼야 하며, 융복합 산업에 특화된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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