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내년 초 예정된 섀도보팅제 폐지를 유예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6일 '섀도보팅(Shadow Voting) 폐지 유예 필요성 및 관련 쟁점 고찰' 보고서를 통해 내년 초 폐지를 앞두고 있는 섀도보팅제 폐지를 2016년까지 유예하자고 주장했다.
한경연은 지난 4년간 상장회사 5곳 중 2곳(39.6%)이 섀도보팅제를 활용*해온 것으로 조사된 가운데, 제도가 폐지될 경우 진통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섀도보팅제는 의결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예탁결제원이 불참한 주주들을 대신해 중립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마련한 제도다. 지난해 소액주주들의 의사결정을 왜곡한다는 이유로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면서 올해 말까지 운영된다.
먼저 한경연은 섀도보팅제를 대체할 만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는 전자위임장제도는, 이미 2007년부터 미국에서 도입해 소액주주의 주주총회 참여를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전자위임장제도는 회사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공인전자서명을 활용해 위임장을 전달하는 방식을말한다.
또 한경연은 제도 폐지를 2달여 앞둔 지금, 주주총회 무산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것을 우려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섀도보팅제 활용률이 가장 높은 감사, 감사위원 선임이 대표적인 안건이다. 의결 요건이 3%로 제한되는 사항이다 보니 내년에 정족수가 충족되지 않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임기가 남아있는 감사와 감사위원을 재선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실제 상장회사협의회가 올해 정기주주총회 임원선임 관련 섀도보팅 요청 현황을 설문조사한 결과, 감사위원 선임 시 90%, 감사 선임 시 82%가 섀도보팅제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연 관계자는 "적절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섀도보팅제를 폐지할 경우, 기업에 큰 부담을 주는 등 경영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향후 2년간 제도 폐지를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주주총회 결의 시 섀도보팅과 같은 보완책이 필요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엄격한 보통결의 정족수 요건을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보통결의 시 의결 정족수를 출석의결권의 과반수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25%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반면, 외국은 의결 정족수 규제가 우리보다 엄격하지 않다. 영국과 스위스 등은 보통결의 시 발행주식 총수와 관계없이 출석의결권의 과반수 이상을 의결정족수 요건으로 규정한다.(참고 1) 일본의 경우, 발행주식 총수의 과반수 이상을 의사정족수 요건으로 정하고 있지만, 정관에 따라 삭제할 수 있어 출석의결권의 과반수만 충족해도 결의가 가능하다.
한경연 관계자는 "주주총회 시 의결권행사에 관여도가 낮고 단기 이윤창출을 위해 주식을 투자하는 주주의 성향도 정족수 요건을 완화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의사가 없는 주주에게 과도한 책임과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발행주식 총수의 25% 이상 기준을 삭제하고 출석의결권 과반수 기준으로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경연은 감사와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규정 또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감사와 감사위원 선임의 독립성을 확보한다는 목적으로 의결권을 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의 주식을 합해 3% 이내로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는 외국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특이한 규제다. 2대ㆍ3대 대주주의 경우 3% 의결권 제한 기준이 개인에게만 적용되고 그들의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의 합은 별도 제한이 없어 최대주주보다 2대ㆍ3대 대주주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경연 관계자는 "섀도보팅제가 폐지되면 기업이 감사?감사위원을 선임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제도 폐지에 앞서 기업이 해당 제도를 활용하도록 만드는 불합리한 규제들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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