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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韓 마라톤, 아버지를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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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韓 마라톤, 아버지를 잃다 이봉주[사진=노해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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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4월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춘계실업축구연맹전은 명칭만 실업연맹전이었다. 참가한 열한 팀 가운데 대부분이 군이나 정부기관 또는 정부 산하 기관이었다. 방첩부대, 해병대. 병참감실. 공병감실, 서울시경, 철도청, 한국전력, 대한중석, 석탄공사 등이다. 순수 실업팀은 금성방직과 제일모직 두 곳이었다. 금성방직은 쌍용그룹의 뿌리쯤 되는 기업이다. 제일모직은 제일제당과 함께 삼성그룹의 모체이다.

1962년부터 1971년까지 존속한 제일모직 축구부는 중앙정보부가 만든 양지와 팽팽하게 맞선 실업 강호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대표팀 감독 등을 지낸 김호, 1970년대 포스트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린 김재한, 당시 보기 드문 공격력을 뽐낸 측면 수비수 박병주 등이 주요 선수로 활동했다. 현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선수들의 대선배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제일모직 축구부로 출발한 삼성그룹의 스포츠 활동은 오늘날 야구의 삼성 라이온즈, 축구의 수원 삼성, 배구의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농구의 서울 삼성 썬더스와 용인 삼성 블루밍스 등으로 이어졌다. 아마추어 종목에도 상당한 신경을 쓴다. 그동안 레슬링, 탁구, 럭비 등의 저변 확대를 이끌었고, 대한육상경기연맹과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사를 맡고 있다.


재벌의 역기능과 별개로 재계가 한국 스포츠 발전에 끼친 영향력은 크게 평가받을 만하다.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건 1980년대 초반이다. 대한체육회는 1982년 7월 12일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조상호 회장의 후임으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제27대 회장으로 선임했다. 정 회장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 과정에 크게 기여한 데 이어 한국 아마추어 스포츠의 본산인 대한체육회의 수장을 맡아 1984년 10월 노태우에게 자리를 물려 줄 때까지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힘썼다. 1920년 조선체육회 출범 이후 역대 대한체육회 회장 가운데 순수 기업인 회장은 정주영이 처음이었다. 제24대 김택수 회장은 기업인이긴 했지만 정치인으로 더 많은 활동을 했다.

정 회장 이후 재계 인사들의 참여는 활발해졌다. 축구의 김우중, 탁구의 최원석, 유도의 박용성, 테니스의 조중건, 복싱의 김승연, 레슬링의 이건희, 필드하키의 정태수, 양궁의 정몽구, 골프·농구의 이동찬 등이다. 특정 종목의 팀을 육성해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지난 8일 타계한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골프, 농구뿐 아니라 한국 마라톤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 명예회장이 코오롱 마라톤부에 쏟은 애정은 각별했다. 그는 1980년대 초에 2시간15분의 벽을 깨는 선수에게 5천만 원, 2시간 10분 내에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에게 1억 원의 포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1958년 제3회 도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이창훈이 우승한 이후 한국 마라톤은 1980년대에 접어들 때까지 길고 긴 암흑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11월 3일자 '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 참조)

[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韓 마라톤, 아버지를 잃다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사진=코오롱 제공]


이 명예회장이 이 같은 약속을 했을 무렵 한국 최고 기록은 1983년 이홍열이 뉴질랜드 해밀턴국제대회에서 세운 2시간17분41초였다. 세계 최고기록은 2시간8분대에 진입해 있었다. 이 명예회장이 내건 포상금은 당시 엄청난 거액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박철순, 김봉연 등 특A급 선수들의 계약금인 2500만 원의 두 배였다. 당시 고급 아파트의 대표 격이었던 서울 한남동 H아파트의 30평형대 두 채를 살 수 있었다. 세계 수준과 격차가 워낙 컸기에 글쓴이를 비롯한 많은 체육 기자들은 '그저 해 본 약속'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이홍열은 1984년 마라톤 기록의 산실이던 동아대회에서 2시간14분59초로 골인해 5000만 원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황영조는 1992년 오이타-벳푸대회에서 2시간8분47초를 기록해 1억 원을 챙겼다. "신 형, 영조가 일본 신기록을 세웠어." 운동장 공중전화로 서울에 있는 글쓴이가 일하는 신문사로 전화해 황영조의 한국 최고 기록 수립 사실을 알린 고인(정봉수 감독)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고인은 어찌나 경황이 없었는지 한국 기록을 일본 기록으로 착각해 얘기했다.


황영조 외에 1990년과 1991년 두 차례 2시간11분대 기록을 낸 김완기와 2000년 도쿄 국제대회에서 한국 최고 기록(2시간7분20초)을 세운 이봉주 등도 코오롱 마라톤부에서 뛰었다. 또다시 암흑기에 접어든 한국 마라톤. 이 명예회장의 별세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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