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 VS 은행 책임 공방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위조수출서류로 대규모 대출을 받고 법정관리를 신청한 '모뉴엘' 사태가 무보와 은행간의 책임 공방전으로 번지고 있다. 은행권은 무역보험공사 보증을 근거로 3000억원대 자금을 모뉴엘에 대출해줬다 떼일 처지에 놓였다. 채권은행들은 무보 측에 변제의무가 있다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고, 조만간 채권단협의회를 구성할 방침이어서 향후 지루한 법정다툼까지도 예상된다.
24일 채권은행 관계자들은 "채권회수를 위해 은행이 모여 협의를 하는 과정을 거쳐 앞으로 대응 방향도 정리할 것"이라면서 "기본적으로 무보의 보증담보를 보고 대출을 해준 부분이기 때문에 보증을 선 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무보가 돈을 변제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무보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무보 관계자는 "무보는 은행이 발급한 수출입자간 결제보고서를 보고 보증을 서줬다"면서 "일반적으로 수출채권을 통한 거래는 은행이 기본적으로 하는 금융행위이고 여기에 더해 담보력이 들어간 것인데 마치 절대적으로 무보의 보증만 믿고 대출을 해줬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봐도 문제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모뉴엘 2013회계연도 감사보고서(개별 기준)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무역보험공사가 8개 은행에게 지급보증을 선 보증액은 총 2970억2420만원 상당(달러화 24일 환산 기준)이다. 무보가 1년을 기준으로 보증서를 재발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은행들이 이 지급보증을 믿고 돈을 빌려줬다 떼일 위기에 처한 셈이다.
은행별로는 IBK기업은행이 단기수출보험과 무신용장매입 명목으로 무보에 보증받은 돈이 총 736억원 상당이다. 외환은행도 단기수출보험 보증을 받아 8100만달러(약 859억원), 국민은행은 수출환어음매입 보증을 받아 4800만달러(약 509억원)를 보증 받았다. 이밖에 농협은행은 수출환어음매입으로 한국산업은행은 운전자금과 외환수출어음매입으로 각각 3000만달러(318억원)를 보증받았다. 광주은행은 477만달러(5억원),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800만달러(약85억원), 수협중앙회는 1000만달러(100억6000만원)로 나타났다. 무역보험공사가 보증을 서지 않은 대출액까지 합하면 떼일 위험이 생긴 돈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무보와 은행 모두 '서류'만 믿고 거액의 대출을 해줬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수출입자간 결제보고서만 보고 보증서를 내준 한국무역보험공사와 무보의 보증만 믿고 돈을 꿔준 은행도 제대로된 실사없이 돈을 빌려줬다는 책임에선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정황만 보면 무역보험공사와 채권은행, 회계사까지 다 모뉴엘의 수출채권 위조에 속아넘어간 셈이다.
채권은행 관계자는 "매출이 1조원이 넘는 회사였고 무역은 다른 3국에서 제조해 수출되는 것도 많기 때문에 은행이 무엇을 수출했는지는 서류상으로 확인할 수 밖에 없다"면서 "많은 국제무역거래는 이렇게 이뤄진다"고 해명했다.
한편 무보와 법정다툼이 시작되면 은행 실적에 또다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출채권도 위조된데다 분식회계까지 했다면 도대체 뭘 믿고 돈을 빌려줄 수 있느냐"면서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허술한 구멍이 KT ENS 사태에 이어 연달아 터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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