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추적 - 20년전이나 며칠전이나…사고의 함정을 딛고 살긴 똑같다
부실관리·안이한 안전의식·사고후 점검코스 닮아
설계·시공사 책임붇는 법규 없었던 그때
특별법 만들었지만 여전히 책임소재 불분명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박준용 기자] # 1994년 10월21일 오전 7시38분. 시내버스를 타고 등굣길에 나서는 무학여고 학생들과 시민들에겐 여느 날처럼 평범한 출근ㆍ등굣길이었다. 그러나 평온한 아침은 한 순간 '참극'으로 바뀌고 말았다.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던 성수대교의 10~11번 교각 사이의 상부 트러스 48m가 별안간 무너져 내린 것. 학생과 시민들이 타고 있던 16번 시내버스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진 상판 위로 떨어졌다. 꽃다운 학생과 시민 32명의 목숨을 뺏아간 잔인한 참사였다.
# 2014년 10월17일 오후 5시53분.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의 한 옥외광장에서는 유명 가수들이 무대에 나와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좁다란 광장에 사람이 몰려들자 몇몇 시민들은 비교적 높게 솟은 환풍구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흥겨움도 잠시, 환풍구 덮개가 흔들흔들하나 싶더니 순식간에 무너졌다. 비명소리와 함께 시민들은 18.7m 아래로 추락했고 현재까지 16명이 희생됐다.
21일로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20주년을 맞았다. 그간 '사고공화국'의 악명을 벗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20년 만에 똑 같은 10월에, 그것도 추락사고라는 것까지도 닮은 꼴인 '판교 참사'는 우리 사회의 '안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안전관리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방치했다는 점까지 많은 점에서 흡사한 20년 전과 오늘의 참사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성수대교ㆍ판교 환풍구 참사…'안이한 안전관리' 공통점
성수대교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부실시공 등 안이한 안전관리에 있었다. 성수대교는 트러스 공법(Trushㆍ접합점을 핀 등으로 연결한 구조)으로 건설된 교량인 만큼, 이음새에 문제가 생기면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주기적으로 세밀한 점검을 통해 이음새를 관리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시공사였던 동아건설은 부실시공으로 사고의 단초를 마련했다. 당시 사고 조사결과 연결 부분이 심하게 녹슬어 있었고, 각 철재(鐵材)를 잇고 압력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던 상판의 이음새 역시 결함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공사 도중 볼트 등을 무리하게 삽입해 구멍이 변형되면서 손으로 풀 수 있을 정도로 강도가 약화됐다.
이런 시공사의 부실시공을 사고로 확대시킨 것은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한 서울시였다. 당시 시는 사고 직전 교량 이음새가 벌어지고 있다는 신고가 두 차례나 들어왔는데도 아무런 대응을 취하지 않았다. 안전점검 역시 소홀했다. 20년 이상 된 교량에 국한해 정밀안전진단을 하다 보니 사고 시점 기준으로 15년(1979년 건설)이 된 성수대교에 대해서는 육안검사가 고작이었다. 시 관계자는 "과거에는 한 번 지어놓으면 이를 유지ㆍ관리한다는 개념 자체가 부족했다"며 "시공이 완벽하지 않았다면 관리라도 잘 했어야 최소한의 치유ㆍ유지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교 참사 역시 성격은 다르지만 안이했던 안전관리가 원인이었다. 당초 공연기획사는 환풍구를 등지고 무대를 설치할 예정이었지만, 주관사 측이 '더 많은 참여'를 위해 무대 위치를 옮기면서 결과적으로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 됐다. 게다가 사고 당시 현장에는 38명이나 되는 행사진행요원들이 있었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도 안전관리를 책임지지 않았다.
소방ㆍ경찰 당국 역시 무대응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주최 측에서 안전점검을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소방당국은 '광장이 매우 좁고 점검할 만한 시설물이 없다'는 이유로 손을 놓았다. 경찰도 고작 교통안전을 위해 2명의 인력만 배치했을 뿐이다.
◆안전규정 미비…책임소재도 불분명
안전관리가 부실하게 된 것은 책임자를 제대로 명시하지 않았던 관련법의 허점 탓도 컸다. 성수대교 붕괴 때는 설계ㆍ시공사에게 책임을 묻는 법규가 없었다. 이 때문에 법원이 성수대교 붕괴의 이유를 '동아건설의 부실시공'이라 판단하고도 설계와 시공 과련자들을 처벌하기 어려웠다. 결국 97년 11월 대법원 형사3부는 1심에서 무죄선고된 관련자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등죄에 대해 형법 제30조 소정의 공동정범의 관계가 성립된다고 봐야 한다"면서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근거로 처벌했다.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적극적' 판결이었다. 그럼에도 처벌수위가 높지는 않았다. 현장소장 신모씨와 서울시 현장책임자 여모씨만 각각 금고 2년, 금고 1년6월을 선고받았을 뿐 나머지 책임 공무원ㆍ시공사 간부 등은 집행유예를 받는 데 그쳤다.
국회는 부랴부랴 1995년 1월'시설물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서는 부실설계 및 감리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판교사고에서도 이는 되풀이되고 있다. 안전관리 소홀에 대한 지적에 법규가 '방패'가 되고 있다. 현행 공연법에 따르면 3000명 이상의 시민이 참여하거나 위험성이 있는 야외 공연의 경우에만 해당 지자체장에게 통보하게 돼 있다. 1000여명이 모였던 사고 날의 공연은 통보를 하지 않아도 됐던 셈. 성남시 조례에도 일반 광장에 대한 안전, 승인관련 책임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환풍구 부실도 관련 법규정 미비가 불렀다. 시민들의 안전을 크게 위협할 수 있는 노상 환풍구지만 이를 어떻게 설치할지는 거의 시공사 측의 재량 사항이다.
◆20년간 계속되는 도돌이표 참사…"安全 패러다임 전환해야"
이처럼 '다른 듯 닮은' 참사가 20년간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제 안전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혜진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장은 "안전은 특정한 누군가의 몫이 아니라 모두에게 보편적인 권리가 돼야 하는 만큼, 비용과 효율을 넘어 생명과 안전을 모든 것의 제1원칙으로 두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통제ㆍ감시로만 접근하는 안전을 넘어 시민들에게 무엇이 위험한지 알 권리를 주고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개발독재 시기를 거치며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안전ㆍ공존에 대한 윤리적 통제가 부족했고 이것이 이윤을 위해 편법과 재량권 활용이 가능하게 하는 법령미비로 이어졌다"면서 "사회적 논의를 거친 후에 지속적으로 법령을 정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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