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리더십 비결은 집요함
과거·영토분쟁·경제부활 과제 산더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리더십은 '치밀함'과 '집요함'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정치를 시작한 이후 그는 패전국이라는 멍에를 벗어던지고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기 위해 한 평생을 바쳐왔다.
2006년 처음 총리에 올랐을 당시 아베 총리는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일본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격상했다. 방위성으로 격상되기 이전에 방위청은 52년 간 내각부 산하의 외청에 불과했지만 아베 총리의 정부 조직 개편 이후 각의에 독자적 안건을 상정할 수 있고 예산 요구도 가능한 부서로 발돋움한 것이다. 당시 아베 총리는 자위대법의 잡칙에 있는 국제 긴급 원조 활동, 유엔 평화 유지 활동, 주변 사태법에 근거한 후방 지역 지원 등을 자위대의 '본래 임무'로 정하며 방어목적에 한정된 자위대의 성격을 슬그머니 바꿨다.
불명예스럽게 총리관저를 떠난 지 6년만에 다시 총리 관저에 입성한 아베 총리는 올해 7월 헌법에 대한 해석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집단자위권은 그동안의 자국 방어에만 무력행사를 허용하는 원칙을 넘어 동맹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에도 무력대응을 할 수 있는 권리다.
헌법 개헌 문제에 있어서도 아베 총리는 집요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2007년 국민투표법을 제정했다. 일본은 헌법을 개정할 경우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발의해 국민투표 과반수 찬성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07년 아베가 국민투표법을 제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국민투표의 구체적 절차는 담겨 있지 않았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올해 6월 아베는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통해 2018년부터 국민투표 연령을 만 20세에서 만 18세로 낮췄다. 이로써 오랜 숙원이었던 일본 헌법 개헌을 위한 제도적 틀을 완비했다.
아베 총리의 보통국가 만들기 프로젝트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과거사 문제에서부터 영토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직면한 갈등의 고리는 이미 풀기 어려운 난제가 돼 버렸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일본 경제 역시 되살릴 수 있을 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일본 정치의 특성상 안정적 정책 추진을 하지 못한다는 점도 약점이다.
오바마 리더십: 통합 꿈꾸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소문난 골프광이지만 농구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농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부모는 오바마가 두 살일 때 이혼을 했고, 유년 시절 오바마에게 친부(親父)는 부재했다. 오바마는 열 살때 하와이에서 어색하게 아버지를 만났는데 당시 아버지는 아들에게 농구공을 선물했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대신 10살 꼬마는 농구공을 끌어안았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포용력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던 포용력은 정치인 오바마에게 통합의 리더십으로 발현됐다. 이는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오바마가 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오바마는 2004년 7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렸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진보의 미국도 보수의 미국도 없습니다. 미합중국만이 있습니다"라는 통합의 메시지로 전 미국인에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통합을 강조한 그를 백인들은 '흑인' 오바마가 아닌 '미국인' 오바마로 보았고 오바마는 그해 말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이어 2008년 당당히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에 올랐다.
통합을 강조하는 그의 정책은 보편적 가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모든 미국인의 의료보험 혜택을 목표로 한 오바마케어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는 대외관계에서도 2009년 1월20일, 자신의 첫 번째 대통령 취임사에서 먼저 손을 내밀겠다며 화합을 강조했다.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오바마의 외교 방식은 적지 않은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지만 분명한 한계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오바마는 2010년 러시아와 '신 전략무기감축협상(New START)' 체결, 지난해 이란 핵 협상 타결 등을 통해 핵무기 감축 노력에서 많은 외교적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대화를 우선시하는 오바마의 외교 방식은 주도권을 쥐지 못 하고 끌려가기만 하는 유약한 외교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확인된 러시아의 강경 모드, 계속된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대립은 미국이 중재자로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논란을 낳았다.
오바마도 변화를 시도, 지난 5월 미국의 이익 걸린 사안에는 직접 개입하고 그렇지 않은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조치를 취한다는 원칙을 뼈대로 한 신개입주의 외교 전략을 천명했다. 하지만 최근 시아파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IS)' 격퇴를 위해 시리아에 미군을 파병한 것이 제2의 이라크전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오바마를 괴롭히고 있다.
박근혜 리더십 : 냉철함과 냉정함 그 사이 어디쯤
'세월호참사'라는 위기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명확히 보여줬다
박 대통령은 사고의 원인이 대체로 드러나자 '국가개조'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그처럼 냉정해질 준비가 돼 있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제2의 대한민국을 향해 진일보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누구나 공감하지만 너무 빨리 객관화 돼 버린 박 대통령의 냉철한 리더십은 경제ㆍ이념적으로 양극화 된 사회를 통합시키는 데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했다.
흔히들 박근혜 리더십을 '원칙과 신뢰, 약속' 등 단어로 설명한다. 북한을 상대로 한 안보정책이나 핵심적 정책 입안 등 문제에 있어선 "이 방향이 옳다"고 판단한 것을 박 대통령은 끝까지 밀어붙여 대체로 이뤄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기초연금, 증세 없는 복지 등 대선 공약을 후퇴시킬 때는 국민들에게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훼손시키기도 했다.
격동의 동북아 안보지형 속 박 대통령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성공적 균형외교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ㆍ일본의 견제라는 강대국 간 기싸움은 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쉽지 않은 선택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지만, 한반도 안보문제에 있어서 주도권을 놓지 않으며 미ㆍ중과 협력을 강화하는 열린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위안부 문제를 두고 일본 정치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며 장기간 경색국면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는 한미일 3각 공조 약화라는 원치 않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를 낳는다.
대통령 취임 전 많은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보여줄 '여성 리더십'에 기대를 걸었다. 이것은 포용력과 배려, 공감, 세심함 등을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성별과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다. 권위적인 국정운영 스타일, 폐쇄적 의사결정 시스템 등은 오히려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다.
박 대통령의 여성 리더십은 남성 중심의 정치환경에서 용인돼 온 일종의 '비정상적 관행'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이 점에 있어선 평가가 아직 이르지만, 퇴임 후 온갖 구설수에 올랐던 전직 대통령들과는 확실한 차별성이 있을 것이란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또 '불통 이미지' 역시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성향에서 나온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원칙' 혹은 '고집'의 결과로 현실화 된 정책들이 향후 어떤 결과를 낼 것이냐에 따라 박근혜 리더십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리더쉽의 비결은 우직함
당·정·군을 넘어선 중국 최고의 권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리더십의 핵심은 '우직함'이다. 파란만장했던 중국 현대사를 몸소 겪으며 나락에 빠지기도 했던 그를 중국 최고지도자로 이끌어왔던 비결도 바로 우직함 덕분이다.
시 주석은 최근 중국 사회를 좀먹고 있던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강도 높은 반부패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 사회 체질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시 주석의 개혁작업은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 정권이 정권 초기 반부패투쟁을 벌여 권력을 안정시켜왔던 것과도 확연히 다르다. 정적 제거나 권력 강화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중국 최고 수뇌부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중국 공안과 사법부를 움켜줬던 저우융캉(周永康)과 그 측근들의 부패의 끈은 시진핑 등극 이후 초토화 됐다. 최고위 지도부를 지낸 원로는 형사상 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중국 공산당 수뇌부의 오랜 묵계마저 깨졌다. 원로 정치로 불려왔던 기존 중국 공산당의 밑기둥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지난 2년간 부패로 처벌받은 공직자와 경제인이 21만명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다. 이 과정에서 시 주석의 친누나인 치차오차오(齊橋橋) 역시 부패 혐의 등으로 출국금지를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반투패투쟁에 지위 고하가 없고 안과 바깥이 없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시 주석은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기존의 직무를 분산시켰던 권력구조를 깨고 여러 형태의 영도소조(領導小組)와 위원회를 만들어 조장 등을 겸직하며 당ㆍ정ㆍ군을 넘어 실질적인 중국 최고 지도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시 주석이 강력한 권력 추구에 나선 것은 역으로 중국이 직면한 문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과정의 과실 속에서 빈부격차와 지역격차, 정치적 자유화 요구 등에 직면해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불거진 홍콩의 직접선거 요구와 신장ㆍ위구르의 독립 투쟁 등 내부적 갈등도 산적한 상황이다. 더욱이 G2로서 미국과 상호 존중하는 '신형대국관계' 형성,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 유지 등도 그가 리더십을 보이며 풀어내야 할 숙제다.
푸틴 리더십 : 강한 러시아 위해서라면
블라디미르 푸틴은 자신의 집무실에 항상 표트르 대제(표트르 1세)의 사진을 걸어둔다. 표트르 대제(1682~1725년 재위)는 로마노프 왕조 제4대 황제다. 러시아 절대왕정을 확립하고 서유럽에 비해 근대화에 뒤처져있던 러시아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는 러시아의 모든 관습과 풍습을 개혁하였으며, 당시 북유럽 최강이었던 스웨덴과 전쟁을 벌여 승리함으로써 오늘날 러시아 영토에 가까운 국경선을 확립했다.
푸틴은 '강한 러시아의 재건'을 꿈꾸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듯 강한 러시아를 위해서라면 푸틴은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불도저식 리더십'을 보여준다.
하지만 푸틴이 단순히 힘만 앞세우는 스타일은 아니다. 공격적인 행보의 뒤에는 그만큼 치밀한 계산을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대통령 취임 후 가즈프롬을 국유화해 거대 기업으로 키웠다. 가즈프롬으로 유럽의 에너지 공급권을 움켜쥔 다음 유럽을 견제하고 있으며 유럽을 볼모로 미국도 동유럽 문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보고 있다.
크림반도 병합 때에도 푸틴은 유럽이나 미국이 말로만 러시아를 비난할 뿐 결국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하고 있었다. 푸틴에게 필요한 것은 명분이었고 결국 그는 손 안 대고 코 푼 것처럼 힘 안 들이고 크림반도를 병합하는데 성공했다.
푸틴은 지금도 미국과 유럽에 맞설 강한 러시아를 위해 '유라시아경제연합(EEU)', '가스 OPEC' 등을 추진하고 있다.
치밀한 계산을 위해 푸틴은 정보의 확보를 중요시한다. 푸틴은 어린 시절 '창과 방패'라는 첩보 영화를 본 뒤 뛰어난 첩보원 한 명이 군대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첩보원이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법학부 국제법학과를 졸업한 뒤 푸틴은 스물두 살이었던 1976년 KGB에 들어가 1990년까지 근무했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KGB의 후신인 FSB를 대폭 확대 개편했다. 과거 KGB의 조직원 수가 32만여명이었던 것에 비해 FSB의 조직원 수는 50만명에 달한다. 이는 러시아 인구 300명당 1명꼴이다.
수령체제 물려 받은 김정일 리더십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모습 선보여
김정은 북한 제1국방위원장은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이 만든 수령체제를 물려받은 독재자지만 자기만의 리더십을 내보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든 수령체제를 물려받아 북한 인민과 군부의 절대충성을 받는다는 점에서 '전통적 리더십'을 갖고 있다. 그러나 추종자들이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고 따를 만큼 천성적 재능이나 인성에 리더십의 뿌리를 두는 '카리스마적 리더'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김정은은 아버지 세대의 원로와 신진 인사간 균형, 총정치국장ㆍ인민무력부장 교체 등을 통해 군부와 엘리트 계층의 충성심 확보에 집중해왔지만, 그에게 카리스마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는 지난해 12월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해 단호한 독재자임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지난 4월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1차 회의와 지난달 25일 제2차 회의를 통해 조직과 인적 개편을 마무리했다.
고유한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은 리더십이 없으면 북한을 끌고 갈 수 없다"면서 "현재 자기식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알려진 정보가 없어 학문적 의미의 리더십을 김정은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면서 "그렇지만 김정은은 개방적이고 대중친화적이며,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은 터라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대중과의 접촉빈도를 높이고 이를 실시간으로 대내외에 공개하고 있다. 특히 군인들과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는 모습은 아버지 김정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경제 운용도 자율이나 개방의 냄새가 난다. 공장과 기업소, 농장 등지에서 시행하고 있는 자율경영관리조치를 도입해 생산활동을 통해 나온 생산물의 40%는 국가에 상납하고 60%는 개인들이 갖도록 유인을 줬다. 김정은은 시장기능을 하면서 북한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장마당'을 폐쇄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개발구, 특구 등을 확대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김정은은 조직과 인적개편을 통해 군부와 엘리트 계층의 충성심을 확보해 유일지도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선전을 통해 '애민 지도자'라는 이미지 구현에 힘을 쏟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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