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자대표會 사과 해야…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필요"
"입주자대표會·용역업체·경비원 간 甲·乙·丙구조도 근본적 개선해야"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최근 서울시 내 유명 아파트 단지에서 입주민의 인격 모독성 발언으로 경비노동자 이모(53)씨가 분신을 시도한 가운데, 이씨의 가족과 시민사회에서는 해당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의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일반노조)와 이씨의 가족들은 13일 사고가 발생한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의 모 아파트 단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주자 대표가 이번 분신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며 "향후 대책마련과 재발방지 대책 논의를 위한 노조-입주자 대표회의 간 공동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분신을 시도한 이씨는 평소에도 소수 입주민들로부터 무시·모멸감이 드는 발언은 물론 괴롭힘과 비인간적 대우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고 당일 오전 8시30분쯤에도 한 입주민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이어 9시께 시너(thinner)로 분신 자살을 기도했다. ▶본지 10월10일자 보도 참조
이와 관련해 노조 관계자는 "함께 일하는 다른 경비노동자들도 일부 입주민으로부터 무시·모멸감을 자주 당해왔다"며 "입주민 편의를 위해 주차를 대신 해주는데 외부에서 사고가 났음에도 경비노동자에게 전가한다던가, 한 입 베어 문 시루떡을 주는 등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고로 이씨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6000장이 넘는 피부조직을 이식한 상태다. 그러나 이씨의 상태가 여전히 위중함은 물론, 앞으로도 얼마나 추가적인 수술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관계자는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분신을 시도한 이씨의 막내아들인 이모(24)씨가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 낭독이 이어졌다. 이씨는 "기독교인으로서 평소에 자해를 시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던 아빠에게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절대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아빠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모독적인,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셨으면 그런 선택을 하셨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지고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일반노조와 가족들은 당사자에 대한 치료비 및 생계대책 마련과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사고 수습대책은 당사자에 대한 치료비와 가족에 대한 생계대책 마련"이라며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며, 경비노동자를 하인으로 인식하는 일부 입주민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재발방지 대책의 무의미한 만큼, 우선적으로 입주민의 인식전환에 필요한 홍보·토론회 등이 우선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비노동자이 일방적인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구조 개선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일반노조는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입주자대표회의·용역업체·경비노동자의 갑·을·병 구조에 있다"며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재발방지의 핵심"이라고 꼬집었다.
윤지영 공익법무법인 '공감' 변호사도 "소수 입주민에 의한 괴롭힘 행위가 발생해도 경비노동자들은 혹시나 해고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모든 것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같은 문제는 특정한 개인과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경비원 전체의 문제라고 볼 수 있으며 인권 침해, 차별, 모욕적 행위 등을 경비원들이 혼자서 감내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노동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