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여기는 어디야? 강남 교보생명 사거리 뒷골목. 불타는 금요일 늦은 저녁. 자정무렵 여기저기 길게 줄을 선 인파들에 입이 딱 벌어진다. "여기는 실내포차, 저기는 클럽인데 밤새 불야성예요" "강남의 불금이 시작됩니다" 젊은이들이 옷과 화장 헤어스타일, 악세사리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뽐낸다. 피부색과 눈빛이 다른 외국인들도 곧잘 눈에 띈다. 이질감보다는 다양한 개성이 젊음의 역동성안으로 녹아드는 느낌이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
야장이 선다
신화와 종교와 역사와 유물과 자연속
날것의 욕망이 되살아나 춤춘다.
갓 잡아낸 생선의 꿈틀거림과 비린내
살이 타고 뼈가 휘어지고 물방울이 튀는 날 것을 꿈꾼다
욕망을 태우기 위해 빛을 휘감고 흔들리는 몸의 그림자
음악을 타고 천년의 정글위로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앙코르왓트 야시장을 방문했을 때 느낌을 메모해 둔 내용이다. 관광객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른 이방인들과 섞여 길거리에서 춤을 춘다. 밤이 진해질수록 젊음의 열기에 금기와 금제는 녹아내린다. 강남의 불금위로 금제에서 해방된 앙코르왓트의 야시장이 겹쳐진다.
"형 내말 듣는거야. 정신차려!" 기자를 하던 후배가 고기전문가와 동업으로 횡성한우 전문점을 차렸다. 개업 축하차 찾아 고기를 먹은 다음 2차를 하고 나오던 중이다. 임금님께 올리던 특산품(어사품)을 먹으면서 얘기하라고 어사담이라 가게이름을 지었단다. 가게의 전망과 전략을 얘기하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 때문이다. 말그대로 쭉쭉빵빵이다. 금요일 밤을 만끽하기 위해 멋지게 차려입은 예쁜 여자들이 너무 많다. 눈을 어디다 둬야 할 지 모르겠다. 눈 둘 곳이 너무 많다.
지금은 불금이지만 우리 때는 토요일밤의 열기, 토요일은 밤이 좋아였다. 존트라볼타가 주연한 토요일밤의 열기(saterday night fever 1977년)는 디스코열풍을 일으켰다. 야전(야외전축)을 가지고 뒷동산에 올라 비지스(Bee Gees)의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스트레스를 풀던 때로 돌아간다. 음악은 몸이고 가사는 옷이라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음악의 속살에 취해 소리를 지르며 스테이지로 뛰어나가던 젊은 시절이 그리워진다.
"강남의 불금을 아나요" 오랜만에 세종시를 찾은 아내에게 내가 겪은 문화적충격을 얘기했다. 주말부부로 지내다 집안정리를 해준다며 몇달만에 찾은 아내를 위해 준비한 코스가 계룡산 남매탑등반과 금강변 산책이다. 일요일 아침, 안개가 걷히는 강변을 걸으면서 아내도 편안해 한다. "젊은이들의 뜨거운 세상을 모르면서 강변에 만족하면 노인네 되는거 아냐"라며 강남불금여행을 제안했다. 중년의 세상과 젊음의 세상이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강남의 불금을 둘이 함께 가보기로 했다. 우리 나이에 출입가능한 클럽이 있을지 모르겠다.
불타는 금요일. 아니 김종찬이 "그대 나를 두고 떠나 가지 말아 토요일은 밤이 좋아 이밤은 영원한것"이라고 노래하던 토요일밤. 그밤의 뜨거움과 갈망은 무엇이었을까?
열망, 열정, 욕망, 욕정, 꽉막힌 듯한 답답함을 풀기위한 갈증. 갈구. 아니면 이 모든게 뒤섞인 그 어떤 것.
욕정은 말 그대로 욕정이다. 뜨겁기만 하다. 욕망은 뜨거운 열기속에 차가운 심지를 감추고 있다. 갈증과 갈구는 수동적이다. 열정은 뜨거운 애정이다. 열망은 뜨겁게 뭔가를 바란다.
그때는 사람마다 조금씩 결이 달랐다. 친구중에는 그저 춤이 좋아 마구 흔들어 대는 놈. 프로라고 자부하는 자칭, 도시의 사냥꾼. 친구들이 가니까 따라다니는 덩달이족. 뭔지모를 열망과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쫒아다니다 멍때리는 푼수. 어쨋든 닫혀진 청춘속에서 뭔가를 갈구하는 열망이 있었다. 뜨겁게 간절하게 뭔가를 바라고 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뜨거운 것은 식고 불은 꺼지기 마련이다.
아내와의 강남불금여행은 꺼져가는 열정을 다시 돌이키기 위한 기획이다. 회춘기획 1탄이다. 클럽은 못들어 가도 뭔가를 갈구하는 열망은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나가에 이사무 감독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쥰세이와 아오이 두 남녀의 10년에 걸친 이별과 만남의 사랑이야기다. 아오이가 20살에 만난 그들은 오해로 해어진다. 그러나 항상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란 갈망이 있다. 열정이다. 그러나 오해를 간직한채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현실이 있다. 더이상 사랑때문에 상처받으려 하지 않는다. 냉정이다. 영화는 두 사람이 10년 전 했던 "너(아오이)의 서른번째 생일날, 연인들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장소인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자"는 약속이 이뤄지면서 결실을 맺는다.
두주인공이 간직한 열정과 냉정은 거리가 있다. 젊음은 열정과 냉정사이에서 방황한다. 중년은 좀 달라도 될 듯하다. 열정과 냉정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는게 청춘이라면 중년은 두가지를 동시에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중년에게 열정과 냉정은 함께 다룰수 있는 공깃돌이다. 열정만 회복한다면.
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