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출판사에선 1년 내내 책 한 권도 안 내는 곳도 많아졌다 한다. 출판을 해봤자 1천권 팔기도 힘겨워졌다. 기본 3천권은 팔아야 '장사'를 했다고 하던 시절이 겨우 얼마 전인데, 요즘 책들은 출판하면 바로 무덤으로 들어가는 사산아와 다르지 않다. 이 지경이 되니 책 속에 미래가 있다고 외쳤던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느냐고 끌탕을 하고, 출판으로 먹고사는 쪽에선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을 독서교육대같은데라도 보내서 정신을 번쩍 들게 해서 책 좀 사보게 해주거나 아예 나랏돈으로 책을 대거 사들여 출판사들이 공기업처럼 되도록 해주십사 하는 무죄한 과욕을 내비치기도 한다.
책을 안 읽는 것, 책을 안 사보는 것, 책이 흥미롭지 않은 것, 서점이나 도서관이 매력을 잃어가는 것. 이건 분명히 놀랍고 끔찍한 일이다. 많은 옛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서 얻은 소프트웨어를 우리들을 위해 그 속에 넣어놓아 시간을 뛰어넘는 소통으로 삼고자 했다. 또한 동시대의 지식과 지혜들도 책을 통해 넓고 깊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책장을 넘겨야 할 사람들이 도무지 이쪽에 관심과 흥미가 없거나 제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그것들을 사 볼 의사가 없으니, 이건 인류가 퇴락하고 정신문명이 망쪼가 되는 일임에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2천년 문명사의 기틀을 이루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1천년 지식의 보고였다 하더라도, 그래서 인간이 '문(文)'에 경배하는 '문명'과 '문화'를 일궈왔다 하더라도, 생산과 소비가 쿵짝이 맞는 '거래'였기 때문에 번성이 가능했다는 사실에는 이의를 달기 어렵다.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고 외쳐도 독자가 딴 곳을 보고 있으면 말짱 황이다. 이를테면 책읽기는 소통의 한 방식일 뿐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책읽기의 적은, 인간의 감관에 새롭고 강력하게 기생하기 시작한 컴퓨터와 태블릿, 스마트폰, 그리고 영상시설과 게임기, 그리고 교통의 발전에 힘입은 여행상품들과 놀이상품들, 테마파크같은 것들이다. 목가적인 시절에는 여행이나 한거(閑居)의 필수품이 책이었지만, 이젠 그들의 시선조차도 산만해져서 더 강렬하고 매력적인 것에 눈이 팔려있기 십상이다. 부산영화제니 지역축제니 지역 스토리텔링 이벤트 따위를 생각해보라.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신문을 읽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한때 스포츠지로 바꿨다가 무가지로 옮겨갔다가 이젠 그 사망한 출판물들을 버리고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꺼내서 하염없이 뭔가를 만지작거린다. 그 속에도 책이 있고 글들이 있지만, 그것들에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금방 다른 곳으로 돌려가며 시간을 바쁘게 쓰고 있을 뿐이다. 요컨대 책이 잃은 것은 독자가 아낌없이 내줬던 그 '시간'이다. 이제 독자는 책에게 내줄 눈이 없고 머리가 없고 마음의 여지가 없다. 그 시간을 써야할 다른 것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책이 죽은 것은 독자의 탓이 아니고 이 시대의 정신이 몰락했기 때문도 아니다. 출판사가 장사를 못한 탓은 더더욱 아니고, 책 내는 사람이 형편없는 쓰레기 콘텐츠들만 내기 때문은 더더더욱 아니고, 세상이 경박해졌기 때문도 아니다. 책이 소통의 중심에 서있기에 부적절해졌기 때문이라고 정직하게 인정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통은 '권위'나 '당위'에 의지해서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매력과 관심이 없다면 천년의 소통도 한 순간에 죽을 수 밖에 없다. 바쁘시다는데야, 그래서 안 읽겠다는데야 도리 없지 않은가. 전두환이 다시 돌아와 '삼책교육대'를 만든다 해도 그들을 열독자와 애독자로 만들 순 없다. 이렇게 말하긴 쉽지만 책의 신화를 믿는 많은 이들을, 이런 잔인한 말들로 설득할 순 없다. 그렇다고 책이 이제 모두 사라진단 말인가. 이 많은 책들이 해오던 역할과 공헌을 무엇이 대치하고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흐름이 옳지 않으면 모두가 정신을 차려 흐름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소리가 이명처럼 들린다. 하지만, 책이 사라지지 않고 책 문명이 끝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이 지금이나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가까운 미래에도 존속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위험한 생각일지 모른다. 책의 존재 방식과 소통 방식이, 그 실지(失地)를 조금이라도 되찾기 위해 천년의 관행까지도 대수술하는 자기혁신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
책 안 읽는, 스마트한 무뇌사회가 도래하고 있다고 섣불리 개탄을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밥줄로 얽힌 이들이 지르는 비명까지 말릴 순 없다. 나 또한 책을 몇 권 내봤지만, 따박따박 인세가 들어오는 부자가 되는 꿈은 접은지 오래됐다. 물론 끝없이 가볍고 쉬운 읽을거리로 옮겨가는 독자를 원망할 생각도 없다. 인간은 필요한 것들과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잘 조합해 무독서 사회의 영혼을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지난 천년의 인간과 다음 천년의 인간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좀 더 심호흡을 하고 급변하는 소통세태를 읽어가야 하지 않을까.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